칼럼 못난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못난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
도가사상(道家思想)의 고전인 <장자(莊子)>에는 무용지용(無用之用), 즉 ‘쓸모없음의 쓸모 있음’에 대한 우화(寓話)가 도처에 실려 있다. 그 요지는, 기름진 땅에서 자라는 잘 생긴 쓸모 있는 나무는 자라나면서 다양한 용도에 쓰기 위해 베어져 큰 나무로 자라지 못한다. 그러나 구부러지거나 갈라지거나 독한 냄새가 나서 쓸모없는 나무는 아무도 손을 대지 않아 거목으로 자란다. 장자 내편(內篇)에 이런 이야기가 실려 있다. 석(石)이라는 목수가 제자를 데리고 제(齊)나라에 갔다.
곡원(曲轅)이라는 곳에 가니 거대한 신목(神木)이 있었다. 그 나무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시장바닥처럼 많았다. 그런데 우두머리인 석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냥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제자는 정신없이 그 나무를 쳐다보다가 스승이 다른 쪽으로 가버리는 데에 놀라 급히 스승을 뒤쫓아 가서 물었다. “이처럼 좋은 목재를 거들떠보지도 않으시고 가버리시니 어찌 되신 겁니까?” 그러자 석이 대답했다. “쓸모없는 나무다! 배를 만들면 금방 가라앉을 것이고, 관(棺)을 만들면 썩을 것이며, 그릇을 만들면 쉽게 부서져 쓸 수 없고, 문이나 창을 만들면 진이 흘러나와 더러울 뿐이며, 기둥을 만들면 나무굼벵이가 들끓게 된다. 제목으로 쓸 수 없는 나무이다. 쓰일 곳이 없어 저토록 오래 살 수 있는 것이다.”장자는 말한다. “산의 나무는 저 스스로 자신을 해치고 등불은 자신을 태운다. 계피나무는 식용이 되기 때문에 베어지고, 옻나무는 옻칠로 쓰이기 때문에 칼로 쪼갠다. 세상 사람들은 유익하다는 것을 알 뿐이며, 쓸모없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쓸모 있음을 알지 못한다.”한편 장자 잡편(雜篇)에는 장자의 절친한 친구이자 명가(名家: 논리학파)의 대표적 인물인 혜자(惠子)와의 문답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먼저 혜자가 장자를 비평했다. “자네의 말은 아무 쓸모가 없어.” 그러자 장자가 대답했다. “쓸모없는 것을 알아야 비로소 참으로 쓸모 있는 것을 말할 수 있지. 이 땅은 더없이 넓고 크지만, 인간들에게 소용되는 것은 단지 발을 딛는 부분일 뿐이야.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발로 딛게 될 땅의 나머지 부분을 몽땅 땅 밑까지 파 버리는 것이 오히려 쓸모가 있다고 하겠는가?” 혜자가 대답했다. “아니야, 쓸데없는 짓이네.” 장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쓸모없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쓸모 있다는 것이 확실하지 않나.”우리 속담에 못난 나무가 선산(先山)을 지키고 못난 아들이 부모를 모신다는 말이 있다. 앞의 장자 우화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곧고 단단하며 잘 생긴 나무는 집 지을 목재나 가구용으로 쓰기 위해 다 크기도 전에 베어진다. 그러나 비뚤어지고 옹이가 많은 나무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 거목으로 자란다. 그리하여 묵묵히 선산을 지킨다.
필자가 어려서 살던 시골 마을에 잘난 장남과 못난 차남이 있었다. 공부를 매우 잘하는 장남은 일류대학 법대에 합격하고 결국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검사가 되었다. 그는 가문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그러자 돈푼깨나 가진 졸부들이 돈과 딸을 싸 들고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이 잘난 아들은 가장 조건이 좋은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 그런데 아뿔싸! 돈더미 속에서 공주처럼 살아온 이 며느리는 촌티 나는 시부모를 보지도 않으려 한다. 시댁을 개떡으로 알고 자기 친정 식구들하고만 어울리고 시댁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결국, 이 부모는 실컷 고생해서 아들 공부시켜놓고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반면에 학교 다닐 때 공부 못한다고 갖은 구박을 당했던 차남은 자동차 정비기술을 배워 자동차공장에 취직했으며 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다. 부모도 잘난 장남과 똑똑한 큰며느리보다 그렇게 잘나지 못하고 그저 평범하지만 사람 냄새 나는 차남과 둘째 며느리가 더 좋아졌다. 차남은 떡두꺼비 같은 손자도 부모님께 안겨드렸다.순자(荀子)는 “천리마도 한 번 뛰어서는 열 걸음을 나아갈 수 없고, 둔한 말일지라도 열흘을 달리면 역시 거기에 미칠 수 있다.
공적을 이루려면 중도에 그만두지 않아야 한다(騏驥一躍, 不能十步, 駑馬十駕, 則亦及之, 功在不舍)”라고 말한다.법가사상의 거두이자 순자의 제자인 한비자(韓非子)에 이런 말이 실려 있다. 말을 잘 감별하는 백락(伯樂)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백락은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이 물으면 천리마 감별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노둔한 말을 감별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 까닭은 천리마는 매우 귀해서 그 감별법을 알아봤자 그걸 써먹을 기회가 거의 없어 돈을 벌 수 없지만, 둔마는 날마다 거래되기 때문에 써먹을 기회가 많아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사업을 하는 리더들은 아마 천리마 같은 영민(靈敏)한 파트너 얻기를 갈망할 것이다. 실력은 물론 주인의식과 책임감을 느끼고 척척 일을 알아서 처리하는 인재 말이다. 그러나 그런 천리마는 매우 귀하고, 또 있다 하더라도 관리하기가 무척 까다롭다. 그런 인재는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은 네트워크 사업에 뛰어들 가능성이 작다. 그런 인재는 얻었다 하더라도 쉽게 떠나간다. 평범한 둔마라도 길들이기 나름이다. 물론 그 둔마를 길들이는 데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둔마가 선산을 지키고 부모를 모실 것이다.
곡원(曲轅)이라는 곳에 가니 거대한 신목(神木)이 있었다. 그 나무를 구경하는 사람들이 시장바닥처럼 많았다. 그런데 우두머리인 석은 거들떠보지도 않고 그냥 앞으로 걸어갔다. 그의 제자는 정신없이 그 나무를 쳐다보다가 스승이 다른 쪽으로 가버리는 데에 놀라 급히 스승을 뒤쫓아 가서 물었다. “이처럼 좋은 목재를 거들떠보지도 않으시고 가버리시니 어찌 되신 겁니까?” 그러자 석이 대답했다. “쓸모없는 나무다! 배를 만들면 금방 가라앉을 것이고, 관(棺)을 만들면 썩을 것이며, 그릇을 만들면 쉽게 부서져 쓸 수 없고, 문이나 창을 만들면 진이 흘러나와 더러울 뿐이며, 기둥을 만들면 나무굼벵이가 들끓게 된다. 제목으로 쓸 수 없는 나무이다. 쓰일 곳이 없어 저토록 오래 살 수 있는 것이다.”장자는 말한다. “산의 나무는 저 스스로 자신을 해치고 등불은 자신을 태운다. 계피나무는 식용이 되기 때문에 베어지고, 옻나무는 옻칠로 쓰이기 때문에 칼로 쪼갠다. 세상 사람들은 유익하다는 것을 알 뿐이며, 쓸모없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쓸모 있음을 알지 못한다.”한편 장자 잡편(雜篇)에는 장자의 절친한 친구이자 명가(名家: 논리학파)의 대표적 인물인 혜자(惠子)와의 문답이 다음과 같이 실려 있다.
먼저 혜자가 장자를 비평했다. “자네의 말은 아무 쓸모가 없어.” 그러자 장자가 대답했다. “쓸모없는 것을 알아야 비로소 참으로 쓸모 있는 것을 말할 수 있지. 이 땅은 더없이 넓고 크지만, 인간들에게 소용되는 것은 단지 발을 딛는 부분일 뿐이야.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발로 딛게 될 땅의 나머지 부분을 몽땅 땅 밑까지 파 버리는 것이 오히려 쓸모가 있다고 하겠는가?” 혜자가 대답했다. “아니야, 쓸데없는 짓이네.” 장자가 말했다. “그렇다면 쓸모없는 것이야말로 참으로 쓸모 있다는 것이 확실하지 않나.”우리 속담에 못난 나무가 선산(先山)을 지키고 못난 아들이 부모를 모신다는 말이 있다. 앞의 장자 우화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곧고 단단하며 잘 생긴 나무는 집 지을 목재나 가구용으로 쓰기 위해 다 크기도 전에 베어진다. 그러나 비뚤어지고 옹이가 많은 나무는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아 거목으로 자란다. 그리하여 묵묵히 선산을 지킨다.
필자가 어려서 살던 시골 마을에 잘난 장남과 못난 차남이 있었다. 공부를 매우 잘하는 장남은 일류대학 법대에 합격하고 결국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검사가 되었다. 그는 가문의 자랑거리가 되었다. 그러자 돈푼깨나 가진 졸부들이 돈과 딸을 싸 들고 구름처럼 모여들었다. 이 잘난 아들은 가장 조건이 좋은 여자를 아내로 맞았다. 그런데 아뿔싸! 돈더미 속에서 공주처럼 살아온 이 며느리는 촌티 나는 시부모를 보지도 않으려 한다. 시댁을 개떡으로 알고 자기 친정 식구들하고만 어울리고 시댁은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결국, 이 부모는 실컷 고생해서 아들 공부시켜놓고 천덕꾸러기로 전락하고 말았다. 반면에 학교 다닐 때 공부 못한다고 갖은 구박을 당했던 차남은 자동차 정비기술을 배워 자동차공장에 취직했으며 부모를 모시고 살고 있다. 부모도 잘난 장남과 똑똑한 큰며느리보다 그렇게 잘나지 못하고 그저 평범하지만 사람 냄새 나는 차남과 둘째 며느리가 더 좋아졌다. 차남은 떡두꺼비 같은 손자도 부모님께 안겨드렸다.순자(荀子)는 “천리마도 한 번 뛰어서는 열 걸음을 나아갈 수 없고, 둔한 말일지라도 열흘을 달리면 역시 거기에 미칠 수 있다.
공적을 이루려면 중도에 그만두지 않아야 한다(騏驥一躍, 不能十步, 駑馬十駕, 則亦及之, 功在不舍)”라고 말한다.법가사상의 거두이자 순자의 제자인 한비자(韓非子)에 이런 말이 실려 있다. 말을 잘 감별하는 백락(伯樂)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백락은 자기가 미워하는 사람이 물으면 천리마 감별하는 법을 가르쳐주고, 자기가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노둔한 말을 감별하는 법을 가르쳐주었다. 그 까닭은 천리마는 매우 귀해서 그 감별법을 알아봤자 그걸 써먹을 기회가 거의 없어 돈을 벌 수 없지만, 둔마는 날마다 거래되기 때문에 써먹을 기회가 많아 많은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 사업을 하는 리더들은 아마 천리마 같은 영민(靈敏)한 파트너 얻기를 갈망할 것이다. 실력은 물론 주인의식과 책임감을 느끼고 척척 일을 알아서 처리하는 인재 말이다. 그러나 그런 천리마는 매우 귀하고, 또 있다 하더라도 관리하기가 무척 까다롭다. 그런 인재는 사회적 인식이 좋지 않은 네트워크 사업에 뛰어들 가능성이 작다. 그런 인재는 얻었다 하더라도 쉽게 떠나간다. 평범한 둔마라도 길들이기 나름이다. 물론 그 둔마를 길들이는 데는 많은 시간과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나 그 둔마가 선산을 지키고 부모를 모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