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TOMY CHANNEL 대한민국

translation
Home

인터뷰 단 하루도 이 날을 꿈꾸지 않은 날이 없다

프린트
단 하루도 이 날을 꿈꾸지 않은 날이 없다
최초의 멤버에서 최고의 멤버까지 - 박용옥 임페리얼마스터
박용옥 임페리얼마스터는 애터미의 창업 멤버나 다름없다. 애터미가 사무실도 얻기 전, 전북 익산의 망한 오리탕집에 모였던 십여 명 중 한사람이다. 비록 첫 출발의 자리는 초라했지만 그 자리에서 나누었던 이야기는 현실이 되었고 그는 애터미 최고 직급자인 임페리얼마스터 자리에 당당히 설 수 있게 되었다.
희망의 말이 심장에 꽂히다
“10억 원을 지게차로 떠드리겠습니다.”
박용옥 임페리얼마스터는 10여 년 전 그 말을 처음 들었을 때 그냥 헛웃음을 웃고 말았다. ‘어쩌면 저렇게 눈도 깜빡하지 않고 거짓말을 할까?’ 그런 생각뿐이었다. 마케팅플랜이다 뭐다 해서 몇 시간 동안 설명이 이어졌지만 그런 말들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렇게 지루한 시간을 이겨내며 그냥 집에 가버릴까 고민하던 순간 박한길 회장의 마지막 한 마디가 그의 심장에 날아와서 꽂혔다.
“지금의 삶은 희망이 없지 않습니까. 우리 이것을 통해서 희망을 가져봅시다. 희망이 없을 때 유일한 희망은 희망을 갖는 것입니다.”
그의 나이 55세였다. 아무 희망도 꿈도 없던 그의 심장에 날아온 그 한 마디에 울컥하고 가슴에서 뭔가 솟아오르는 것이 느껴졌다.
3년이라는 단서 달고 시작한 사업
박용옥 임페리얼마스터는 젊은 시절 사업을 하다가 크게 망한 후 네트워크마케팅을 처음 접하고 열심히 일했지만 생각처럼 돈이 모이지 않았다. 급기야 새벽에 졸음운전을 하다가 교통사고를 내고 말았다. 왼쪽 다리를 잃을 뻔한 대형사고였다.
“그동안 높은 직급으로 보낸 사람이 여럿 있었는데 한 사람도 면회를 오지 않았습니다. 알고 보니 병문안 올 돈이 없어서 못 온다는 거였어요.”
한 발 떨어져서 보니 현실이 더욱 또렷이 보였다. 그동안 무턱대고 믿어왔던 비전이 모두 허상이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그는 아픈 다리를 어루만지며 다시는 네트워크마케팅을 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퇴원 후 불편한 다리를 끌고 노점을 했다. 돈이 없었기 때문에 몇 십만원치 생선을 도매상에 떼어다 판매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살아도 산다고 할 수 없었다. 근근이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삶이었다. 그때 그의 나이 50대 초반이었다. 아무런 희망을 가질 수 없는 나날들이었다.
그런 어느 날 아는 사람으로부터 네트워크마케팅을 하자는 연락을 받았다. 아무리 희망이 없고 삶이 어려웠지만 그것만큼은 단호하게 거절했다. 이 핑계, 저 핑계 대면서 거절을 했지만 집 앞까지 차를 보내서 타고 오라는 말에 어쩔 수 없이 차를 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따라 나선 자리가 바로 ‘전설’의 오리탕집 만남이었다. 바로 그날 박한길 회장과 운명적인 만남 이후 새벽에 집으로 돌아와서 깊이 고민한 끝에 결단을 내렸다. 가족들에게 ‘3년만’이라는 단서를 달고 애터미 사업에 뛰어들었다. 실낱같은 희망이었지만 그 희망이 있다는 자체만으로도 기뻤다.
‘폐업 전문가’라는 별명 얻어
특별한 재주도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단 한 가지, 될 때까지는 하는 것이었다. 누군가를 한 번 소개받게 되면 그 사람이 애터미 사업을 할 때까지 쫓아다녔다. 그 사람이 안 되면 그 사람으로부터 다시 누군가를 소개받았다. 그렇게 소개를 받고 또 소개를 받음으로써 조금씩 파트너들을 늘렸다. 아는 사람이 전혀 없던 영남 지역을 뚫었고, 일본과 중국 시장도 개척 할 수 있었다. 그렇게 1년 6개월 정도 하니까 비로소 돈이 모이고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족들에게 약속했던 3년보다 훨씬 빠른 시기였다.
박용옥 임페리얼마스터는 ‘폐업 전문가’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그를 만나면 사람들이 하던 일을 그만둔다는 뜻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공무원이나 직장인은 사표를 내고, 장사를 하고, 사업을 하던 사람들은 폐업을 하고 애터미 사업에 뛰어든다는 의미이다.
“살면서 많은 일을 해봤습니다. 하지만 가야 할 확실한 목적지가 확실하게 정해져 있는 일은 애터미 밖에 없었습니다. 이건 누구나 반드시 해야 하는 사업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과 희망을 나누겠다
박용옥 임페리얼마스터에게는 습관이 하나 있다. 혼자 있을 때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는 습관이다. 사람들은 그의 그런 모습을 볼 때면 무척이나 기분 좋아 보인다고 한 마디씩 한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아픔도 있다.
“정말 힘들 때 혼자서 콧노래를 불렀습니다. 노래를 흥얼거리면 기분이 좋아지니까요.”
그런 긍정적인 마인드가 오늘의 그를 만들었다.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할 수 없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힘들 때면 늘 미래를 꿈꾸었다.
그는 마침내 애터미 최고 직급자인 임페리얼마스터의 자리에 올랐다. 꿈속에서조차 열망했던 바로 그 자리였다. 승급식에서 지게차로 떠 준 10억 원을 선물로 받으며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던 일이 현실이 되는 모습을 목격했다.
“임페리얼마스터가 되면 내 삶이 어떻게 바뀔 것이라는 것을 단 하루도 생각해보지 않은 날이 없습니다. 뒤돌아보니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이제는 더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인터넷 익스플로러 사용자는 [도구]-[호환성보기] 를 클릭하여 호환성보기를 해제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로그인

    GLOBAL GSMC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