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박한길, 그리고 애터미 그 성장의 역사를 돌아보다
연재에 들어가며
첫걸음은 신용불량자들의 모임이었다. 그들에게 호언장담했던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현실로 만들어가며
애터미는 이제 1조 매출을 넘어서는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다. 어떻게 그리고 무엇이 애터미를 성장시킬 수 있었는가? 그 한가운데에는 애터미 최고의 브랜드이자 아이콘인 박한길 회장이 있다. 박한길 회장이 애터미를 어떻게 창업하고 성장 · 발전 시켰는지 그 과정을 연재한다.
애터미는 이제 1조 매출을 넘어서는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다. 어떻게 그리고 무엇이 애터미를 성장시킬 수 있었는가? 그 한가운데에는 애터미 최고의 브랜드이자 아이콘인 박한길 회장이 있다. 박한길 회장이 애터미를 어떻게 창업하고 성장 · 발전 시켰는지 그 과정을 연재한다.
Part 6
잠재적 경쟁자까지도 감안해라
콜마비앤에이치에서 헤모힘과 화장품을 가져가서 판매해 보라고 하자 박한길 회장은 얼마에 판매할까 고민했다. 당시 타사에서는 30만원이 훌쩍 넘는 가격으로 판매하고 있었기에 박한길 회장을 제외한 다른 사람들은 대부분 10만원 정도 싼 20만원 대의 가격을 생각했다. 사실 그만해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었다. 그러나 박한길 회장의 생각은 달랐다. 그는 세트당 7만 6500원을 판매가격으로 책정했다. 당시 5종이었던 스킨케어 세트의 경우 단품 하나의 가격이 1만 5300원 꼴밖에 안된 것이다.
당연히 반발이 컸다. 사람들은 ‘20만 원대 초반으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거나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도 있는데 굳이 우리가 스스로 제품의 가치를 끌어 내릴 필요가 있느냐’면서 반대했다. 사실 자금이 여유로운 것도 아니고 수천 세트 이상을 판매할 만한 판로가 확보된 것도 아닌데 무조건 싸게 판다고 능사는 아니었다. 마진이 좀 있어야 판매량이 적어도 회사가 굴러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터무니없이 비싼 것도 아니고 경쟁사들에 비하면 30% 이상 저렴한 가격인데 더 낮출 필요는 없어 보였다.
박한길 회장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경쟁자가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애터미에서 20만 원대에 출시하면 당연히 경쟁사도 가격을 내릴 것이 뻔하다. 그때 가서 애터미도 다시 가격을 내리고 또 다시 경쟁사도 내리고 하는 경쟁이 계속된다. 이것은 소비자를 속이는 결과가 될 뿐 아니라 경쟁사의 내성을 키워주는 일이 된다. 따라서 처음부터 경쟁사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가격을 책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한길 회장은 “어떤 방법으로도 경쟁사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가격을 정해야 한다”며 “잠재적 경쟁자를 감안하지 않으면 언젠가 우리보다 싸게 출시하는 회사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사에 비해 거의 20% 정도의 가격으로 팔다보니 제품이 좋아서 먹고 싶었는데 비싼 가격 때문에 선뜻 구매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제품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석 달 정도가 지나고 나니 콜마비앤에이치의 재고를 모두 소진할 수 있었다.
당연히 반발이 컸다. 사람들은 ‘20만 원대 초반으로도 충분히 경쟁력이 있다’거나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도 있는데 굳이 우리가 스스로 제품의 가치를 끌어 내릴 필요가 있느냐’면서 반대했다. 사실 자금이 여유로운 것도 아니고 수천 세트 이상을 판매할 만한 판로가 확보된 것도 아닌데 무조건 싸게 판다고 능사는 아니었다. 마진이 좀 있어야 판매량이 적어도 회사가 굴러갈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그렇다고 터무니없이 비싼 것도 아니고 경쟁사들에 비하면 30% 이상 저렴한 가격인데 더 낮출 필요는 없어 보였다.
박한길 회장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경쟁자가 전부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애터미에서 20만 원대에 출시하면 당연히 경쟁사도 가격을 내릴 것이 뻔하다. 그때 가서 애터미도 다시 가격을 내리고 또 다시 경쟁사도 내리고 하는 경쟁이 계속된다. 이것은 소비자를 속이는 결과가 될 뿐 아니라 경쟁사의 내성을 키워주는 일이 된다. 따라서 처음부터 경쟁사가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의 가격을 책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한길 회장은 “어떤 방법으로도 경쟁사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로 가격을 정해야 한다”며 “잠재적 경쟁자를 감안하지 않으면 언젠가 우리보다 싸게 출시하는 회사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경쟁사에 비해 거의 20% 정도의 가격으로 팔다보니 제품이 좋아서 먹고 싶었는데 비싼 가격 때문에 선뜻 구매하지 못했던 사람들이 하나둘 제품을 찾기 시작했다. 그렇게 석 달 정도가 지나고 나니 콜마비앤에이치의 재고를 모두 소진할 수 있었다.
Part 7
절대가격에 도전하다
상황이 조금씩 호전되면서 박한길 회장은 잠시 접어두었던 예전의 꿈을 다시 꺼냈다. 네트워크마케팅을 처음 접했을 때의 감동을, 아이엠코리아닷컴을 시작했을 때의 비전(Vision)을 다시금 떠올린 것이다. ‘좋은 제품을 저렴하게 판매함으로써 소비자도 생산자도 판매자도 이익이 되는 유통, 소비자가 주인공인 유통을 만들자. 그리고 그 유통을 전 세계에 확산시켜 보자.’ 좋은 제품 아니 최고의 제품과 손을 잡았으니 남은 것은 최대한 저렴하게 공급하는 것이다. 절대품질 절대가격의 출발이다.
유통의 주인공은 소비자다. 그러나 작금의 유통은 소비자가 들러리인 모양새다. 유통의 목적은 소비자의 후생증대에 있어야 하지만 대부분의 유통은 마케팅 활동이라는 미명하에 어떻게 하면 소비자의 지갑을 열 수 있을까에 골몰한다. 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편익과는 무관하게 유통업자들의 이익을 위해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여러 유통단계를 만들어 소비자의 부담을 증가시킨다. 박한길 회장은 영리한 사람이다. 마케팅이라는 힘으로 소비자의 지갑을 열려고 하는 것보다 마케팅이라는 힘을 통하지 않고도 소비자가 스스로 지갑을 열게끔 하는 것이 최선임을 안 것이다. 좋은 제품 싸게 판매한다는 것이 바로 소비자를 위하는 유통이자 소비자 스스로 지갑을 열게 만드는 최선의 유통이자 가장 기본적인 유통인 것이다.
특히 네트워크마케팅은 마케팅 비용이 결과에 연동되는 후불제 방식이다. 비용 대비 효과에 대한 위험이 매우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상적인 네트워크마케팅 회사라면 마케팅 활동을 다단계판매원에게 일임하며 그 결과에 따라 후원수당을 지급한다. 물론 판매원의 활동을 측면 지원하기 위한 기본적인 마케팅 활동은 하지만 일반 회사에 비하면 미미한 것을 넘어 거의 없는 수준에 가깝다. 박한길 회장이 호주에서 처음 접한 네트워크마케팅에서 본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하나의 유통단계로 연결, 보다 좋은 제품을 보다 저렴하게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새로운 경제 생태계의 가능성이었다. 더 좋은 제품을 더 저렴하게 판매하면 소비자는 몰린다. 소비자가 몰리면 회사는 성장한다. 아주 쉽고 단순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잊고 있는 원리인 것이다.
박한길 회장은 김치봉 콜마비앤에이치 대표를 찾아갔다. 찾아가서는 다짜고짜 10만 세트 기준으로 생산원가를 산정해 달라고 했다. 김치봉 대표는 어안 벙벙해졌다. 월 500~600 세트가 팔리는 제품을 가지고 10만 세트 운운하니 뭔 일인가 싶었던 것이다. 박한길 회장은 어리둥절해 있는 김치봉 대표에게 “한 달에 5백 세트 판매하는 수준으로 원가를 계산해 주면 결국 5백 세트도 팔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10만 세트 기준으로 원가를 계산해 주면 10만 세트를 팔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누가 들어도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러나 박한길 회장의 논리는 이러했다. 한 달에 500 세트를 만들어 다 팔아도 콜마비앤에이치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10만 세트를 만들어 다 판다면 대박 나는 것이다. 황당해 보이는 논리이지만 묘하게 설득력은 있었다. 김치봉 대표는 100% 망하는 길보다는 1%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얘기 끝나자마자 10만 세트 가격으로 납품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후 콜마비앤에이치는 원가절감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고 박한길 회장도 원가절감 요인이 생기면 집요하게 가격 인하를 요구했다. 그 결과 헤모힘은 2016년 기준 월평균 약 15만 세트를 판매➊, 10만 세트를 훌쩍 넘겼으며 애터미 스킨케어 6 시스템도 단품 포함 1500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기록, 월 평균 15만 세트 이상 판매된 셈이다➋. 더욱 놀라운 것은 헤모힘의 경우 처음 출시 용량보다 2배 이상 늘어났고 애터미 스킨케어 6 시스템도 5종에서 6종으로, 내용량도 품목에 따라 최대 30%까지 늘어났다는 점이다. 사실상 가격을 절반으로 인하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유통의 주인공은 소비자다. 그러나 작금의 유통은 소비자가 들러리인 모양새다. 유통의 목적은 소비자의 후생증대에 있어야 하지만 대부분의 유통은 마케팅 활동이라는 미명하에 어떻게 하면 소비자의 지갑을 열 수 있을까에 골몰한다. 뿐만 아니라 소비자의 편익과는 무관하게 유통업자들의 이익을 위해 생산자와 소비자 사이에 여러 유통단계를 만들어 소비자의 부담을 증가시킨다. 박한길 회장은 영리한 사람이다. 마케팅이라는 힘으로 소비자의 지갑을 열려고 하는 것보다 마케팅이라는 힘을 통하지 않고도 소비자가 스스로 지갑을 열게끔 하는 것이 최선임을 안 것이다. 좋은 제품 싸게 판매한다는 것이 바로 소비자를 위하는 유통이자 소비자 스스로 지갑을 열게 만드는 최선의 유통이자 가장 기본적인 유통인 것이다.
특히 네트워크마케팅은 마케팅 비용이 결과에 연동되는 후불제 방식이다. 비용 대비 효과에 대한 위험이 매우 적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상적인 네트워크마케팅 회사라면 마케팅 활동을 다단계판매원에게 일임하며 그 결과에 따라 후원수당을 지급한다. 물론 판매원의 활동을 측면 지원하기 위한 기본적인 마케팅 활동은 하지만 일반 회사에 비하면 미미한 것을 넘어 거의 없는 수준에 가깝다. 박한길 회장이 호주에서 처음 접한 네트워크마케팅에서 본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하나의 유통단계로 연결, 보다 좋은 제품을 보다 저렴하게 소비자에게 공급하는 새로운 경제 생태계의 가능성이었다. 더 좋은 제품을 더 저렴하게 판매하면 소비자는 몰린다. 소비자가 몰리면 회사는 성장한다. 아주 쉽고 단순하지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잊고 있는 원리인 것이다.
박한길 회장은 김치봉 콜마비앤에이치 대표를 찾아갔다. 찾아가서는 다짜고짜 10만 세트 기준으로 생산원가를 산정해 달라고 했다. 김치봉 대표는 어안 벙벙해졌다. 월 500~600 세트가 팔리는 제품을 가지고 10만 세트 운운하니 뭔 일인가 싶었던 것이다. 박한길 회장은 어리둥절해 있는 김치봉 대표에게 “한 달에 5백 세트 판매하는 수준으로 원가를 계산해 주면 결국 5백 세트도 팔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10만 세트 기준으로 원가를 계산해 주면 10만 세트를 팔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누가 들어도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그러나 박한길 회장의 논리는 이러했다. 한 달에 500 세트를 만들어 다 팔아도 콜마비앤에이치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10만 세트를 만들어 다 판다면 대박 나는 것이다. 황당해 보이는 논리이지만 묘하게 설득력은 있었다. 김치봉 대표는 100% 망하는 길보다는 1%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물론 얘기 끝나자마자 10만 세트 가격으로 납품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후 콜마비앤에이치는 원가절감을 위해 혼신의 힘을 다했고 박한길 회장도 원가절감 요인이 생기면 집요하게 가격 인하를 요구했다. 그 결과 헤모힘은 2016년 기준 월평균 약 15만 세트를 판매➊, 10만 세트를 훌쩍 넘겼으며 애터미 스킨케어 6 시스템도 단품 포함 1500억원에 가까운 매출을 기록, 월 평균 15만 세트 이상 판매된 셈이다➋. 더욱 놀라운 것은 헤모힘의 경우 처음 출시 용량보다 2배 이상 늘어났고 애터미 스킨케어 6 시스템도 5종에서 6종으로, 내용량도 품목에 따라 최대 30%까지 늘어났다는 점이다. 사실상 가격을 절반으로 인하한 것이나 마찬가지인 셈이다.
Part 8
회원의 아픔을 나의 아픔처럼
원가를 10만 세트 기준으로 주면 10만 세트를 팔 수 있노라고 큰소리쳐서 원가 인하에는 합의했지만 당장 새로운 판로가 생긴 것은 아니었다. 500세트 팔던 판로가 갑자기 200배나 뛴 10만 세트를 판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했다. 당장 다음달부터 10만 세트를 판매해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판매망 확충은 발등에 떨어진 불이었다. 고민해도 별다른 수가 보이지 않았지만 사실 결과만 놓고 봤을 때 고민할 필요가 없었다. 잠재적 경쟁자조차도 따라오지 못할 가격이 해답이었다.
입소문은 무서웠다. 애터미 제품이 싸고 좋다는 얘기가 소비자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지며 매출은 기대 이상으로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월 매출 1억을 언제 넘어보나 했는데 어느 순간 10억이 되더니 1년도 안돼서 20억 가까이 껑충 뛰었다.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늘어가는 매출액에 사무실은 전쟁터 같았다. 전산자동화도 안 돼 있던 시절이어서 일일이 매출전표를 확인하고 수기로 수당 계산을 하다 보면 하루 해가 저물었다. 마감 날이면 팩스와 전화는 정신 없이 울려대고 회원들은 사무실 앞에서 장사진을 치기 일쑤였다. 급기야 아내인 도경희 대표마저 사무실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사실 도경희 대표는 그때까지 박한길 회장이 가져다주는 돈으로는 생활이 힘들어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서도 박한길 회장은 회원들의 수당만큼은 놓치지 않았다. 최근 애터미 칼리지에서 도경희 대표는 “지금까지 수당이 제 날짜에 나가지 못한 경우는 은행 전산 오류로 인한 한 번을 빼고는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 난리 북새통 속에서 매주 수작업으로 수당 계산을 하고 은행 문 열기가 바쁘게 수당부터 송금한 것이다. 지금이야 완전 자동화 시스템으로 처리되고 있지만 일일이 사람 손으로 모든 것을 해야 했던 그때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아주 초창기 시절부터 함께 해 온 회원이 박한길 회장에게 전화로 화장품 세트를 판매했다고 전화했다. 박한길 회장은 입금이 확실히 되느냐고 물었다. 회원이 그렇다고 하자 박한길 회장은 입금 확인도 하지 않고 바로 화장품 한 세트 판매한 수당을 송금했다. 그 회원은 당장의 차비조차도 없는 상황이라 마감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박한길 회장은 그 아픔을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기에, 그리고 그 아픔이 남의 아픔이 아니라 자신의 아픔으로 여겨졌기에 팔았다는 말 한마디에 수당을 송금했던 것이다. 애터미 초창기 시절에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함께 어려움을 헤쳐 왔고 아픔을 같이 느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뿐만 아니다. 원데이 세미나가 열리는 날 새벽이면 박한길 회장은 하나로마트에 들렸다. 전날 밤 12시가 넘도록 일하고 퇴근하는 길의 지친 몸으로 떡과 음료수를 사서는 차에 실었다. 당시는 지금처럼 세미나장에 식당이 있는 것도 아니고 참석하는 회원들의 주머니 사정도 여의치 않았다. 해서 박한길 회장은 멀리서 아침도 먹지 못하고 세미나에 참석하는 회원들에게 점심을 먹이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평소 사무실에서는 종종 주변 밥집에서 수십 인분의 밥을 커다란 밥통에 담아 와서는 빙 둘러 앉아 은박지에 나누어 먹기도 했다. 박한길 회장도 회원도 모두 어려웠던 시절, 넉넉지 못한 형편이지만 결식회원만큼은 없게 하려는 박한길 회장의 배려였다.
입소문은 무서웠다. 애터미 제품이 싸고 좋다는 얘기가 소비자들의 입에서 입으로 퍼지며 매출은 기대 이상으로 빠르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월 매출 1억을 언제 넘어보나 했는데 어느 순간 10억이 되더니 1년도 안돼서 20억 가까이 껑충 뛰었다. 그야말로 파죽지세로 늘어가는 매출액에 사무실은 전쟁터 같았다. 전산자동화도 안 돼 있던 시절이어서 일일이 매출전표를 확인하고 수기로 수당 계산을 하다 보면 하루 해가 저물었다. 마감 날이면 팩스와 전화는 정신 없이 울려대고 회원들은 사무실 앞에서 장사진을 치기 일쑤였다. 급기야 아내인 도경희 대표마저 사무실에 출근하기 시작했다. 사실 도경희 대표는 그때까지 박한길 회장이 가져다주는 돈으로는 생활이 힘들어 다른 일을 하고 있었다.
그 정신없는 와중에서도 박한길 회장은 회원들의 수당만큼은 놓치지 않았다. 최근 애터미 칼리지에서 도경희 대표는 “지금까지 수당이 제 날짜에 나가지 못한 경우는 은행 전산 오류로 인한 한 번을 빼고는 한 번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 난리 북새통 속에서 매주 수작업으로 수당 계산을 하고 은행 문 열기가 바쁘게 수당부터 송금한 것이다. 지금이야 완전 자동화 시스템으로 처리되고 있지만 일일이 사람 손으로 모든 것을 해야 했던 그때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아주 초창기 시절부터 함께 해 온 회원이 박한길 회장에게 전화로 화장품 세트를 판매했다고 전화했다. 박한길 회장은 입금이 확실히 되느냐고 물었다. 회원이 그렇다고 하자 박한길 회장은 입금 확인도 하지 않고 바로 화장품 한 세트 판매한 수당을 송금했다. 그 회원은 당장의 차비조차도 없는 상황이라 마감 때까지 기다리기에는 너무 긴 시간이었다. 박한길 회장은 그 아픔을 능히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었기에, 그리고 그 아픔이 남의 아픔이 아니라 자신의 아픔으로 여겨졌기에 팔았다는 말 한마디에 수당을 송금했던 것이다. 애터미 초창기 시절에는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했다. 함께 어려움을 헤쳐 왔고 아픔을 같이 느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뿐만 아니다. 원데이 세미나가 열리는 날 새벽이면 박한길 회장은 하나로마트에 들렸다. 전날 밤 12시가 넘도록 일하고 퇴근하는 길의 지친 몸으로 떡과 음료수를 사서는 차에 실었다. 당시는 지금처럼 세미나장에 식당이 있는 것도 아니고 참석하는 회원들의 주머니 사정도 여의치 않았다. 해서 박한길 회장은 멀리서 아침도 먹지 못하고 세미나에 참석하는 회원들에게 점심을 먹이기 위해 수고를 아끼지 않았던 것이다. 평소 사무실에서는 종종 주변 밥집에서 수십 인분의 밥을 커다란 밥통에 담아 와서는 빙 둘러 앉아 은박지에 나누어 먹기도 했다. 박한길 회장도 회원도 모두 어려웠던 시절, 넉넉지 못한 형편이지만 결식회원만큼은 없게 하려는 박한길 회장의 배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