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터미 매거진 Vol.38(2026.3/4/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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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17년 차 전업주부에서 연봉 4억 사업자로
17년 차 전업주부에서 연봉 4억 사업자로
세 아이의 행복을 지키기 위한 생존의 선택, 박지연 크라운마스터
박지연 크라운마스터 승급식 현장
세 아이를 키우며 17년간 집과 교회만을 오가며 살았던 전업주부의 삶. 남편과의 불화로 아이들을 책임지며 홀로서야 하는 상황에서 애터미의 존재는 절대적인 힘이 되어 주었다. 살림밖에 모르던 평범한 주부였지만, 이제는 전 세계의 파트너들과 해외 사업을 개척해 나가는 사업자로 성장했다.
현모양처를 꿈꾸던 전업주부
박지연 크라운마스터의 어린 시절 꿈은 현모양처였다. 대학 시절 캠퍼스 커플로 만난 남편과 가정을 꾸렸을 때만 해도 그 꿈은 어렵지 않게 이룰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세 아이를 키우며 17년간 전업주부로 살았지만 꿈꾸었던 행복한 가정과는 거리가 멀었다. 남편은 술에 취해 새벽에 귀가하는 날이 잦았고, 그런 날이면 가족을 향한 폭언과 폭력이 반복됐다. 아이들과 함께 남편으로부터 독립하고 싶었지만, 경제력이 없는 마흔다섯 살의 전업주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소비만 했을 뿐인데 수당 입금
그러던 중 우연히 아들 친구 엄마를 통해 애터미를 전달받았다. 얼마 전 딸과 함께 사용하며 품질에 만족하고 있던 화장품이 애터미였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게 됐다. 사업에 대한 이야기는 들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포인트를 모으면 돈이 된다는 이야기는 귀에 쏙 들어왔다. 가격 대비 품질이 너무 좋았기 때문에 집에서 사용하던 생필품을 하나씩 바꿔가기 시작했다. 그러던 어느 날 첫 수당으로 6만 8,160원이 통장에 찍힌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이 돈이 도대체 왜 들어온 거죠.”
통장에 찍힌 금액을 보니 관심이 더 커졌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스폰서를 따라 센터에 나갔고, 결국 속리산에서 열린 애터미 석세스아카데미까지 참석하게 됐다.
“첫 세미나 때 성공자 두 분이 나와서 월 2천만 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고 했어요. 저는 월 2백만 원만 벌 수 있어도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죠.”
돈보다도 더 큰 임팩트를 준 것은 두 사람의 성공 방식이었다. 두 사람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세미나에 빠지지 않고 참석한 점”을 가장 큰 성공 비결로 꼽았다. 17년 차 전업주부로서 특별한 재능은 없지만, 세미나만큼은 빠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말주변도, 인맥도, 자본도 없어도 가능하다.”라는 박한길 회장의 말도 그녀에게 용기를 주었다.
박지연 크라운마스터는 교회 봉사를 주말로 옮기는 등 애터미 세미나 참석을 삶의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로 삼았다. 차가 없었기 때문에 부산에서 세미나가 열리는 속리산까지 가려면 아침 일찍 서둘러 고속버스를 타야 했다. 잠이 많은 아들을 깨우지 못하고 일찍 버스에 오르는 날이면, 버스를 타고 가며 전화로 아들을 깨워야 했다.
세미나에 다녀오면 들은 내용을 정리해서 그대로 따라 해보고, 또다시 배우는 과정을 반복했다. 화장품을 쓰며 피부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지자, 주변에서 먼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더욱 용기를 얻게 됐다.
“이 돈이 도대체 왜 들어온 거죠.”
통장에 찍힌 금액을 보니 관심이 더 커졌다. 좀 더 자세한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스폰서를 따라 센터에 나갔고, 결국 속리산에서 열린 애터미 석세스아카데미까지 참석하게 됐다.
“첫 세미나 때 성공자 두 분이 나와서 월 2천만 원의 소득을 올리고 있다고 했어요. 저는 월 2백만 원만 벌 수 있어도 정말 좋겠다고 생각했죠.”
돈보다도 더 큰 임팩트를 준 것은 두 사람의 성공 방식이었다. 두 사람은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세미나에 빠지지 않고 참석한 점”을 가장 큰 성공 비결로 꼽았다. 17년 차 전업주부로서 특별한 재능은 없지만, 세미나만큼은 빠지지 않을 자신이 있었다. “말주변도, 인맥도, 자본도 없어도 가능하다.”라는 박한길 회장의 말도 그녀에게 용기를 주었다.
박지연 크라운마스터는 교회 봉사를 주말로 옮기는 등 애터미 세미나 참석을 삶의 가장 중요한 우선순위로 삼았다. 차가 없었기 때문에 부산에서 세미나가 열리는 속리산까지 가려면 아침 일찍 서둘러 고속버스를 타야 했다. 잠이 많은 아들을 깨우지 못하고 일찍 버스에 오르는 날이면, 버스를 타고 가며 전화로 아들을 깨워야 했다.
세미나에 다녀오면 들은 내용을 정리해서 그대로 따라 해보고, 또다시 배우는 과정을 반복했다. 화장품을 쓰며 피부 상태가 눈에 띄게 좋아지자, 주변에서 먼저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고 그럴수록 더욱 용기를 얻게 됐다.
애터미 시스템 소득의 위력을 실감하다
애터미를 하기 전 박지연 크라운마스터는 본인 이름으로 된 신용카드 한 장 갖고 있지 않을 정도로 경제력이 ‘제로’에 가까웠지만, 애터미를 통해서 고정적인 수입이 생기면서 아이들과 함께 살 수 있는 방 한 칸을 마련할 수 있었다. 그렇게 조금씩 집을 넓혀가기 시작해, 애터미를 시작한 지 3년 반 만에, 남편으로부터 완전히 독립해서 아이 셋을 혼자 키울 수 있는 자가를 마련할 수 있었다.
2019년에는 파트너들과 세미나에 가던 중 고속도로 교통사고를 당해 수술을 받고 병상에 누워 지내는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수당이 꾸준히 지급되는 것을 보며 애터미 시스템 소득의 힘을 실감했다.
애터미 이후 가장 큰 보람은 아이들이 꿈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연기를 꿈꾸는 첫째, 미술을 하고 싶어하는 둘째, 운동을 원하는 막내를 경제적·정신적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하며 응원하고 있다.
2019년에는 파트너들과 세미나에 가던 중 고속도로 교통사고를 당해 수술을 받고 병상에 누워 지내는 시련을 겪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수당이 꾸준히 지급되는 것을 보며 애터미 시스템 소득의 힘을 실감했다.
애터미 이후 가장 큰 보람은 아이들이 꿈을 펼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연기를 꿈꾸는 첫째, 미술을 하고 싶어하는 둘째, 운동을 원하는 막내를 경제적·정신적으로 전폭적인 지원을 하며 응원하고 있다.
박지연 크라운마스터와 세 자녀
전업주부에서 연봉 4억 사업자로
이제 박지연 크라운마스터는 살림 밖에 할 줄 몰랐던 전업주부에서 연봉 4억 원을 버는 사업자가 되었다.
크라운마스터에 올랐지만, 여전히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얼마 전에는 부산에 거주하는 집 외에 대형 평수의 아파트를 추가로 한 채 더 장만했다. 이곳을 애터미 제품을 체험하고 해외 파트너들이 들어올 때 머물며 본사에서 열리는 세미나에도 참석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해외사업의 거점으로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이제 그는 한 가정의 행복과 독립을 넘어, 자신과 같은 자리에서 출발한 평범한 주부와 파트너들에게 삶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을 전하는 존재가 되고자 한다. 자신의 변화로 증명해 낸 그 가능성을, 더 많은 이들의 용기와 희망으로 확장할 것이다.
크라운마스터에 올랐지만, 여전히 더 높은 곳을 바라보고 있다. 얼마 전에는 부산에 거주하는 집 외에 대형 평수의 아파트를 추가로 한 채 더 장만했다. 이곳을 애터미 제품을 체험하고 해외 파트너들이 들어올 때 머물며 본사에서 열리는 세미나에도 참석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해외사업의 거점으로 적극 활용할 계획이다.
이제 그는 한 가정의 행복과 독립을 넘어, 자신과 같은 자리에서 출발한 평범한 주부와 파트너들에게 삶을 바꿀 수 있다는 확신을 전하는 존재가 되고자 한다. 자신의 변화로 증명해 낸 그 가능성을, 더 많은 이들의 용기와 희망으로 확장할 것이다.
박지연 크라운마스터와 파트너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