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터미 매거진 Vol.35 (2025. 6/7/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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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 꿈은 나와 가족과 파트너들의 삶이 바뀌는 것
내 꿈은 나와 가족과
파트너들의 삶이 바뀌는 것
14번째 임페리얼마스터 탄생… 최규정 임페리얼마스터
회원번호 7번, 최규정 임페리얼마스터. 박정수 임페리얼마스터의 오리탕집에 재료를 납품하다가 박정수 임페리얼마스터의 손에 이끌려 애터미를 시작했다. 전설처럼 회자되는 17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애터미를 시작한 이유는 간단했다. 식당 재료 납품에 한계를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큰 기대도 없었다. 따뜻한 집에서 가족들을 굶기지 않고 살 수 있다면 충분했다. 그런 마음으로 애터미에 올인했다. 결과는 애터미 최고 직급인 ‘임페리얼마스터’였다. 최규정 임페리얼마스터는 “내 꿈은 나와 가족과 파트너들의 삶이 바뀌는 것”이라며 “애터미 회원들이 비빌 언덕이 되어주고 싶다.”라고 말했다.
죽기 살기로 애터미 사업에 매진
애터미 사업을 시작했을 때, 최규정 임페리얼마스터는 죽기 살기로 매달렸다. 식자재 사업을 그만두면서 돈 되는 것은 다 팔아 밀린 식자재 대금을 갚았다. 허름한 중고차 한 대 살 돈도 없어 렌터카로 전국을 돌았다. “한 달에 만 천 킬로에서 만 2천 킬로를 다녔어요. 엔진오일은 한 달에 한 번씩 교환해야 했고 타이어를 다섯 달이면 새 걸로 바꿔야 했어요.”
가족들과 친구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쓰러지지.’ 하고 말렸지만 통하지 않았다. 급기야 왼쪽 반신에 마비가 왔지만, 다행히도 오래지 않아 회복됐다. 그러자 또 죽어라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엔 오른쪽 반신 마비가 찾아왔다. 잠깐 쉬면서 회복하곤 또 방방곡곡을 돌았다. 그 당시 아직 아무도 성공을 맛보지 못했지만, 최규정 임페리얼마스터는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사실 확신이라기보다는 성공해야만 한다는 강한 의지였다. “일곱 번 망하고 여덟 번째가 애터미였어요. 지금이야 7전 8기라지만, 그때는 죽느냐 사느냐였죠.”
당시 최규정 임페리얼마스터는 애터미 회원이자 직원이나 마찬가지였다. 얼마 되지 않는 직원들로 지방 세미나까지 돌리다 보니 노트북도 쓸 줄 알고 블로그도 할 줄 하는 최규정 임페리얼마스터가 방송도 하고 블로그도 운영했다. 그 당시엔 그저 딱 하나 ‘회사가 망하면 안 된다.’라는 생각이 전부였다. 회사가 망하면 꿈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왜 목마른 사람이 샘 판다고 하잖아요. 내 사업도 사업이지만 회사가 망하면 말짱 도루묵이거든요.”
가족들과 친구들은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러다가 쓰러지지.’ 하고 말렸지만 통하지 않았다. 급기야 왼쪽 반신에 마비가 왔지만, 다행히도 오래지 않아 회복됐다. 그러자 또 죽어라고 전국을 돌아다녔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엔 오른쪽 반신 마비가 찾아왔다. 잠깐 쉬면서 회복하곤 또 방방곡곡을 돌았다. 그 당시 아직 아무도 성공을 맛보지 못했지만, 최규정 임페리얼마스터는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사실 확신이라기보다는 성공해야만 한다는 강한 의지였다. “일곱 번 망하고 여덟 번째가 애터미였어요. 지금이야 7전 8기라지만, 그때는 죽느냐 사느냐였죠.”
당시 최규정 임페리얼마스터는 애터미 회원이자 직원이나 마찬가지였다. 얼마 되지 않는 직원들로 지방 세미나까지 돌리다 보니 노트북도 쓸 줄 알고 블로그도 할 줄 하는 최규정 임페리얼마스터가 방송도 하고 블로그도 운영했다. 그 당시엔 그저 딱 하나 ‘회사가 망하면 안 된다.’라는 생각이 전부였다. 회사가 망하면 꿈을 이룰 수가 없기 때문이다. “왜 목마른 사람이 샘 판다고 하잖아요. 내 사업도 사업이지만 회사가 망하면 말짱 도루묵이거든요.”
2019년 크라운 승급프로모션으로 알래스카 크루즈를 탄 최규정 임페리얼마스터 가족
내 성공의 키워드는 ‘제심합력’
네트워크마케팅은 처음이었지만, 애터미 사업은 물 만난 고기처럼 궁합이 잘 맞았다. 제품을 보니 얼마든지 판매할 수 있을 정도로 괜찮았다. 또한 본디 영업이라면 누구보다도 자신 있었다. 여기에 특유의 긍정 마인드와 무모할 정도의 성실함, 끈기가 더해졌다. 그러한 본바탕에 애터미만의 제심합력 정신이 보태졌다. 최규정 임페리얼마스터는 가장 중요한 성공의 비결로 ‘제심합력’을 꼽는다.
애터미 사업은 혼자서 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 한계를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날 익산의 망해가는 오리탕집에서 만났던 사람들 때문이었다. 애터미 이전에 했던 일들은 자기 능력이 성공의 열쇠였다. 식자재 사업 역시 잘 돼도, 안 돼도, 모든 과정과 결과는 오롯이 혼자만의 것이었다. 같은 목표를 가지고 같은 일을 하지만 자영업자는 서로가 경쟁자다. 하지만 애터미 사업은 서로 경쟁자가 아니라 합력자다. 파트너가 성공해야 내가 성공하고 내가 성공해야 스폰서도 성공한다. 최규정 임페리얼마스터는 “힘을 합치면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애터미의 제심합력”이라며 “그것이 바로 애터미가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이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곳인 이유”라고 말했다.
애터미 사업은 혼자서 하기에는 한계가 있는 것이 분명했다. 그 한계를 돌파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날 익산의 망해가는 오리탕집에서 만났던 사람들 때문이었다. 애터미 이전에 했던 일들은 자기 능력이 성공의 열쇠였다. 식자재 사업 역시 잘 돼도, 안 돼도, 모든 과정과 결과는 오롯이 혼자만의 것이었다. 같은 목표를 가지고 같은 일을 하지만 자영업자는 서로가 경쟁자다. 하지만 애터미 사업은 서로 경쟁자가 아니라 합력자다. 파트너가 성공해야 내가 성공하고 내가 성공해야 스폰서도 성공한다. 최규정 임페리얼마스터는 “힘을 합치면 성공할 수 있는 것이 애터미의 제심합력”이라며 “그것이 바로 애터미가 희망을 잃어버린 사람이 다시 희망을 가질 수 있는 곳인 이유”라고 말했다.
저 푸른 초원 위에 800평 집을 짓고
애터미를 하면서 가장 감격스러웠던 순간은 로열마스터를 달성했을 때다. 더 이상은 가족의 생계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크라운마스터가 되고 임페리얼마스터가 됐을 때의 기쁨은 자신의 결정이 옳았음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보증금 다 까인 월세방에서 주인집 눈치 볼 필요 없는 자가 아파트로 이사했다. “내 인생이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가 되는 순간이고, 이제 꿈을 가질 수 있는 거죠.”
최규정 임페리얼마스터의 꿈은 널찍한 마당을 가진 언덕 위의 집이었다. 소싯적 사업을 한답시고 고향 집을 팔아먹고 말았다. 그 고향 집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제2의 고향을 만들어야겠다는 꿈이 된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 그 꿈을 이뤘다. 800평 대지의 언덕 위에 집을 지었다. “언덕에 집을 짓고 살아 보고 싶었거든요. 너무 높지 않고 딱 적당한 높이라 익산 시내가 다 보여요.”
이제 남은 것은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파트너가 자신과 같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숱하게 사업을 망하면서 내심 ‘누가 나에게 조언 좀 해줬으면’ 하는 생각을 가졌었다. 조언이든 경제적 지원이든 조그만 도움만 받을 수 있었다면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것이 굉장히 아쉬웠어요. 그래서 저는 젊은이들을 만나고, 또 우리 파트너들을 만나면 내가 그들이 비빌 언덕이 되어 주고 싶어요.”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했다. 비빌 언덕이 있으면 어려움을, 고비를 넘기기가 수월해진다. 최규정 임페리얼마스터는 자신이 그 비빌 언덕이 되어 주고 싶은 것이다.
최규정 임페리얼마스터의 꿈은 널찍한 마당을 가진 언덕 위의 집이었다. 소싯적 사업을 한답시고 고향 집을 팔아먹고 말았다. 그 고향 집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이 제2의 고향을 만들어야겠다는 꿈이 된 것이다. 그리고 얼마 전 그 꿈을 이뤘다. 800평 대지의 언덕 위에 집을 지었다. “언덕에 집을 짓고 살아 보고 싶었거든요. 너무 높지 않고 딱 적당한 높이라 익산 시내가 다 보여요.”
이제 남은 것은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파트너가 자신과 같이 꿈을 이룰 수 있도록 돕는 것이다. 숱하게 사업을 망하면서 내심 ‘누가 나에게 조언 좀 해줬으면’ 하는 생각을 가졌었다. 조언이든 경제적 지원이든 조그만 도움만 받을 수 있었다면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 것이 굉장히 아쉬웠어요. 그래서 저는 젊은이들을 만나고, 또 우리 파트너들을 만나면 내가 그들이 비빌 언덕이 되어 주고 싶어요.”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빈다고 했다. 비빌 언덕이 있으면 어려움을, 고비를 넘기기가 수월해진다. 최규정 임페리얼마스터는 자신이 그 비빌 언덕이 되어 주고 싶은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