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터미 매거진 Vol.34 (2025. 3/4/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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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글로벌 마인드로 도약하자
글로벌 마인드로 도약하자
일제 36년간의 수탈과 착취, 해방과 더불어 치른 3년여의 한국전쟁은 한국을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국가로 만들어 버렸다. 국민들은 초근목피로 겨우 연명하였고, 정치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그러자 1951년 영국의 더 타임스지는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라는 기사를 실었다. 전후 한국의 재건을 돕기 위해 설립된 유엔한국재건단(UNKRA)의 특별조사단은 1955년 1주일 동안 한국을 시찰하고 난 후 “한국에서 경제 재건을 기대하는 것은 쓰레기통에서 장미가 피기를 바라는 것과 같다.”라고 절망적인 상황을 표현했다.
이러한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1962년에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었고, 한국 경제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경제개발 과정에서 겪었던 석유 파동과 외환 위기 등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이를 효과적으로 극복하고 경이적인 성장을 지속하자 해외 유수의 언론은 이를 ‘한강의 기적’이라고 쓰기 시작했다. 결국 한국은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고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거기다가 정치적 민주화까지 이루어 냈다. 그야말로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피워낸 것이다.
그에 따라 운크타드(UNCTAD, 유엔무역개발회의)는 2021년 7월 2일 개최된 제68차 회의에서 대한민국의 지위를 그룹 A(개발도상국)에서 그룹 B(선진국)로 변경하는 것을 만장일치로 가결하였다. 1964년 운크타드 창설 이래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가 변경된 나라는 한국이 처음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세계 최빈국에서 출발하여 국제 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선진국으로 공인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수많은 신흥국들이 국제 사회의 도움을 받아 경제 개발을 실시해 중진국 수준까지는 빠른 속도로 성장했으나, 대부분 중진국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거나 후퇴해 버렸는데, 한국은 어떻게 지속적인 고도성장이 가능했는가?
한국 경제는 경제개발을 하는 데 있어 근본적인 어려움이 있다. 우선 국토가 협소라고 70%가 산악이어서 농토가 좁아 식량 자급이 불가능하다. 또한 자원이 부족하고, 경제개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석유 등 에너지 자원은 해외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 자본 축적도 돼 있지 않고 기술 수준도 매우 낮았다. 그런데도 한국은 국제 사회의 절망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경이적인 고도성장을 이루어 선진국 진입에 성공했다. 그러면 고도성장을 가능하게 한 요인은 무엇인가?
첫째, 경제하려는(economizing) 의지, 곧 잘살아 보겠다는 국민적 의지가 강했다는 것이다. 경제하려는 의지가 강하지 못하면 후진국이 빈곤에서 탈출하기 어렵다. 우리 국민들은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되자 모두 힘을 한데 모아 힘껏 일했다. 즉 잘살아 보겠다는 국민적 의지의 결집이 1960년대 이후 고도성장을 달성하게 된 정신적 요인이 되었다.
둘째, 높은 교육열이다. 후진국의 경제개발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인재(人才)이다. 아무리 자원이 많고 여건이 좋아도 인재가 없다면 경제개발은 불가능하다. 부족한 물적 자본과 자원은 당장 해외에서 들여올 수도 있으나, 쓸만한 인재를 양성하는 데는 20년 이상이 걸린다. 이러한 교육과 인재라는 측면에서 한국은 준비된 상태에 있었다.
셋째, 적절한 개발 전략이다. 우리나라의 경제개발 전략은 수출주도형 산업화 전략, 다시 말하면 대외지향적 공업화(Outward-looking Industrialization) 전략이었다. 국내만 보지 말고 눈을 밖으로 돌려 세계를 보자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나 당시 우리 경제 상황을 고려해 보면 대단한 도박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상품은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없는 상황에 있었다. 라디오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나라가 물건을 만들어서 해외에 팔아먹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와 대조되는 전략은 대내지향적 전략(Inward-looking Strategy) 또는 수입대체형 공업화(Import-Substitution Industrialization: ISI) 전략이다. 이는 원조나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재화를 국내에서 생산하도록 한다는 전략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대외지향적 정책을 택한 한국, 일본, 싱가포르 등은 모두 경제개발에 성공하였고, 대내지향적 정책을 택한 구 공산권 국가, 남미 국가, 인도, 파키스탄 등은 모두 실패하였다.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전략은 대외지향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21세기 들어 지식정보화와 더불어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경제적 국경이 무너진 오늘날, 대내지향적 전략으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더군다나 거의 대부분의 자원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고, 생산력에 비해 협소한 국내 시장만으로는 더 이상 경제 규모를 증대시킬 수 없는 우리나라의 처지에서 글로벌 마인드와 글로벌 시장 진출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애터미는 이미 세계적 기업이 되었다. 특히 애터미는 지구촌 원서버로 경영되고 있다. 각 라인의 리더들은 우리의 선배들이 대외지향적 정신 자세로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어 냈듯이, 국내 시장의 어려움을 해외 시장 개척으로 극복할 수 있는 진취적인 도전 정신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러한 절망적 상황 속에서도 1962년에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시작되었고, 한국 경제는 빠른 속도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경제개발 과정에서 겪었던 석유 파동과 외환 위기 등 숱한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이를 효과적으로 극복하고 경이적인 성장을 지속하자 해외 유수의 언론은 이를 ‘한강의 기적’이라고 쓰기 시작했다. 결국 한국은 중진국 함정에 빠지지 않고 세계 10위권의 경제 대국이 되었다. 거기다가 정치적 민주화까지 이루어 냈다. 그야말로 쓰레기통에서 장미꽃을 피워낸 것이다.
그에 따라 운크타드(UNCTAD, 유엔무역개발회의)는 2021년 7월 2일 개최된 제68차 회의에서 대한민국의 지위를 그룹 A(개발도상국)에서 그룹 B(선진국)로 변경하는 것을 만장일치로 가결하였다. 1964년 운크타드 창설 이래 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 지위가 변경된 나라는 한국이 처음이다. 결과적으로 한국은 세계 최빈국에서 출발하여 국제 사회에서 만장일치로 선진국으로 공인된 것이다.
그러면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제2차 세계대전 후 독립한 수많은 신흥국들이 국제 사회의 도움을 받아 경제 개발을 실시해 중진국 수준까지는 빠른 속도로 성장했으나, 대부분 중진국 함정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거나 후퇴해 버렸는데, 한국은 어떻게 지속적인 고도성장이 가능했는가?
한국 경제는 경제개발을 하는 데 있어 근본적인 어려움이 있다. 우선 국토가 협소라고 70%가 산악이어서 농토가 좁아 식량 자급이 불가능하다. 또한 자원이 부족하고, 경제개발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석유 등 에너지 자원은 해외에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 자본 축적도 돼 있지 않고 기술 수준도 매우 낮았다. 그런데도 한국은 국제 사회의 절망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경이적인 고도성장을 이루어 선진국 진입에 성공했다. 그러면 고도성장을 가능하게 한 요인은 무엇인가?
첫째, 경제하려는(economizing) 의지, 곧 잘살아 보겠다는 국민적 의지가 강했다는 것이다. 경제하려는 의지가 강하지 못하면 후진국이 빈곤에서 탈출하기 어렵다. 우리 국민들은 경제개발계획이 시작되자 모두 힘을 한데 모아 힘껏 일했다. 즉 잘살아 보겠다는 국민적 의지의 결집이 1960년대 이후 고도성장을 달성하게 된 정신적 요인이 되었다.
둘째, 높은 교육열이다. 후진국의 경제개발을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인재(人才)이다. 아무리 자원이 많고 여건이 좋아도 인재가 없다면 경제개발은 불가능하다. 부족한 물적 자본과 자원은 당장 해외에서 들여올 수도 있으나, 쓸만한 인재를 양성하는 데는 20년 이상이 걸린다. 이러한 교육과 인재라는 측면에서 한국은 준비된 상태에 있었다.
셋째, 적절한 개발 전략이다. 우리나라의 경제개발 전략은 수출주도형 산업화 전략, 다시 말하면 대외지향적 공업화(Outward-looking Industrialization) 전략이었다. 국내만 보지 말고 눈을 밖으로 돌려 세계를 보자는 것이다. 지금 생각하면 당연한 것으로 생각되나 당시 우리 경제 상황을 고려해 보면 대단한 도박이 아닐 수 없었다. 당시 우리나라의 상품은 해외 시장에서 경쟁력을 가질 수 없는 상황에 있었다. 라디오도 제대로 만들지 못하는 나라가 물건을 만들어서 해외에 팔아먹겠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이와 대조되는 전략은 대내지향적 전략(Inward-looking Strategy) 또는 수입대체형 공업화(Import-Substitution Industrialization: ISI) 전략이다. 이는 원조나 수입에 의존하고 있는 재화를 국내에서 생산하도록 한다는 전략이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대외지향적 정책을 택한 한국, 일본, 싱가포르 등은 모두 경제개발에 성공하였고, 대내지향적 정책을 택한 구 공산권 국가, 남미 국가, 인도, 파키스탄 등은 모두 실패하였다.
앞으로도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전략은 대외지향적인 것이 될 수밖에 없다. 특히 21세기 들어 지식정보화와 더불어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경제적 국경이 무너진 오늘날, 대내지향적 전략으로는 결코 살아남을 수 없는 상황이 되었다. 더군다나 거의 대부분의 자원을 해외에 의존하고 있고, 생산력에 비해 협소한 국내 시장만으로는 더 이상 경제 규모를 증대시킬 수 없는 우리나라의 처지에서 글로벌 마인드와 글로벌 시장 진출은 필수적인 요소이다.
애터미는 이미 세계적 기업이 되었다. 특히 애터미는 지구촌 원서버로 경영되고 있다. 각 라인의 리더들은 우리의 선배들이 대외지향적 정신 자세로 지속적인 경제 성장을 이루어 냈듯이, 국내 시장의 어려움을 해외 시장 개척으로 극복할 수 있는 진취적인 도전 정신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
이성연
경제학 박사
1989 경북대학교 경제학 박사 취득
1986 보국훈장 삼일장 수상
1982 미국 브라운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 취득
1976~2010 육군사관학교 및 3사관학교 교수 역임
1976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72 육군사관학교 졸업
1986 보국훈장 삼일장 수상
1982 미국 브라운대 대학원 경제학 석사 취득
1976~2010 육군사관학교 및 3사관학교 교수 역임
1976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졸업
1972 육군사관학교 졸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