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애터미 통역, 인생을 바꾼 운명의 기회
애터미 통역, 인생을 바꾼 운명의 기회
러시아의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 ‘타티아나 김 로열마스터’
타티아나 김 로열마스터는 우즈베키스탄 출신 고려인이다. 1992년 2월, 12살 때 가족과 일가친척들이 할머니의 고향인 러시아 극동 연해주로 이주했다. 농사로 성공해 보겠다고 전 재산을 팔아서 왔지만, 눈앞에 펼쳐진 상황은 너무나 열악했다.
한국어 선생님을 꿈꾸다
전기도 없고, 물도 없었다. 임시로 지은 나무집에서 펠트지를 깔고 지냈다. 마땅한 거처가 없어서 셀 수 없이 이사를 다녀야 했다. 부모님을 도와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열심히 일했지만, 날씨 탓에 수확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지긋지긋한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버지가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어를 배워서 한국어 선생님이 되자.”
타티아나 김은 대학에 입학해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었지만, 농사를 지으며 대학 입학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입학시험을 치르던 시기가 마침 바쁜 농번기라서 당일에도 아침 6시에 오이를 따서 팔고 나서 9시에 시험을 치르러 가야 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당당히 한국어과에 합격했다.
대학 졸업을 1년 앞두고 블라디보스토크 한국어교육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통역도 하며 용돈을 벌었다. 졸업 후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낮은 대학 강사의 월급으로는 생활이 어려워서 사업에 뛰어들었다.
한국어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액세서리를 수입해서 파는 일을 했다. 5년을 열심히 일해서 8개 매장에 직원 12명의 회사로 성장시켰고 아파트와 자동차도 장만했다. 하지만 점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사업도 어려워졌다. 직원들이 독립해서 매장을 오픈할 때마다 매출이 뚝 떨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슬펐던 일은 경제적으로도 많이 도와주고 깊게 믿었던 매니저가 회사 매출을 조작해서 돈을 횡령한 일이었다. 돈도 돈이었지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충격이 너무 컸다. 이후 사람을 잘 믿지 못할 정도로 정신적인 상처도 컸다.
“아버지가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어를 배워서 한국어 선생님이 되자.”
타티아나 김은 대학에 입학해서 한국어를 공부하고 싶었지만, 농사를 지으며 대학 입학시험을 준비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입학시험을 치르던 시기가 마침 바쁜 농번기라서 당일에도 아침 6시에 오이를 따서 팔고 나서 9시에 시험을 치르러 가야 할 정도로 열악한 환경이었지만, 모두의 예상을 깨고 당당히 한국어과에 합격했다.
대학 졸업을 1년 앞두고 블라디보스토크 한국어교육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통역도 하며 용돈을 벌었다. 졸업 후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하지만 낮은 대학 강사의 월급으로는 생활이 어려워서 사업에 뛰어들었다.
한국어에 자신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에서 액세서리를 수입해서 파는 일을 했다. 5년을 열심히 일해서 8개 매장에 직원 12명의 회사로 성장시켰고 아파트와 자동차도 장만했다. 하지만 점점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사업도 어려워졌다. 직원들이 독립해서 매장을 오픈할 때마다 매출이 뚝 떨어졌다. 하지만 무엇보다 슬펐던 일은 경제적으로도 많이 도와주고 깊게 믿었던 매니저가 회사 매출을 조작해서 돈을 횡령한 일이었다. 돈도 돈이었지만 믿었던 사람에게 배신을 당한 충격이 너무 컸다. 이후 사람을 잘 믿지 못할 정도로 정신적인 상처도 컸다.
한국어가 맺어준 애터미와의 운명 같은 인연
액세서리 수입을 위해서 한국을 오가다가 애터미 칫솔과 치약을 처음 접했는데 제품이 마음에 들었다. 그러던 중 우연히 러시아에서 열린 애터미 세미나의 통역을 맡으면서 애터미 시스템에 대해서 알게 되었다. 당시에는 하던 사업이 있었기 때문에 소소하게 부업으로 시작했다. 이듬해인 2019년, 운명적인 기회를 맞게 된다. 모스크바에서 열린 애터미 러시아 법인 오픈 세리머니에서 박한길 회장의 통역을 맡게 됐는데, 그 강의를 직접 통역하면서 애터미가 자신의 인생을 바꿀 기회라는 것을 직감했다.
한국의 석세스아카데미를 다녀오고 나서는 마음이 더욱더 확고해졌다.
애터미에 집중하기 위해 그동안 해오던 액세서리 사업과 게스트하우스 사업 등을 모두 정리했다. 남편은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고 미친 것 아니냐며 고개를 저었다. 타티아나 김은 남편에서 “딱 3년만 시간을 달라.”라고 설득했다.
그날 이후 아침부터 밤까지 애터미 생각만 했다. 개인적인 저녁 약속도 잡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녀 곁을 떠나갔지만 슬프지 않았다. 애터미 상품 공부를 하고 일주일에 5일은 온라인으로 강의를 했다. 코로나 이후 하루 4~5시간만 자면서 다른 도시, 다른 나라로 출장을 다녔다. 아이들 생일도 챙겨 주지 못했다. 첫째 아이의 고등학교 입학시험 때도 애터미 때문에 출장을 가느라 옆에 있어 주지 못했다.
“내가 너무 나쁜 엄마 같아서 마음이 아팠지만, 나중에 아이들까지 다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 넓은 아파트도 한 채 장만했고, 멋진 렉서스 자동차도 새로 뽑았다. 가 보지 못했던 러시아 내 여러 도시를 출장 혹은 가족 여행으로 다녔고, 몽골을 비롯해 UAE의 두바이, 한국의 제주도도 다녀왔다. 이제 더 이상 수입이나 노후 자금에 대한 걱정도 하지 않게 됐다.
한국의 석세스아카데미를 다녀오고 나서는 마음이 더욱더 확고해졌다.
애터미에 집중하기 위해 그동안 해오던 액세서리 사업과 게스트하우스 사업 등을 모두 정리했다. 남편은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고 미친 것 아니냐며 고개를 저었다. 타티아나 김은 남편에서 “딱 3년만 시간을 달라.”라고 설득했다.
그날 이후 아침부터 밤까지 애터미 생각만 했다. 개인적인 저녁 약속도 잡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들이 그녀 곁을 떠나갔지만 슬프지 않았다. 애터미 상품 공부를 하고 일주일에 5일은 온라인으로 강의를 했다. 코로나 이후 하루 4~5시간만 자면서 다른 도시, 다른 나라로 출장을 다녔다. 아이들 생일도 챙겨 주지 못했다. 첫째 아이의 고등학교 입학시험 때도 애터미 때문에 출장을 가느라 옆에 있어 주지 못했다.
“내가 너무 나쁜 엄마 같아서 마음이 아팠지만, 나중에 아이들까지 다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을 굳게 먹었습니다.”
블라디보스토크 시내에 넓은 아파트도 한 채 장만했고, 멋진 렉서스 자동차도 새로 뽑았다. 가 보지 못했던 러시아 내 여러 도시를 출장 혹은 가족 여행으로 다녔고, 몽골을 비롯해 UAE의 두바이, 한국의 제주도도 다녀왔다. 이제 더 이상 수입이나 노후 자금에 대한 걱정도 하지 않게 됐다.
손님이 북적거리는 크고 예쁜 집을 짓는게 꿈
러시아 내에서 한국 제품의 인지도가 매우 높은 편이다. 애터미 건강기능식품 중에서 헤모힘, 비타민C, 유산균, 오메가3, 화장품 분야에서는 애터미 앱솔루트 셀랙티브 스킨케어 세트, 이브닝케어 세트, 비비크림, 헬시글로우 베이스 등이 러시아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앞으로 2년 후면 러시아 사람 두 명 중 한 명은 애터미 제품을 사용할 겁니다. 애터미가 곧 글로벌 H&B(헬스 앤 뷰티) 시장에서 넘버원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애터미를 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됐고, 또 그들과 사이좋게 지내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쁜 일이다. 타티아나 김은 애터미 사업을 “팀 스포츠 같다.”라고 얘기한다.
“모든 선수가 하나가 되어 뛰어야 경기에 이길 수 있지, 혼자 독불장군이 되어서는 성공을 보장받을 수 없어요. 구성원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소통하고 서로 믿고 가족같이 함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타티아나 김이 애터미를 만난 지 꼭 5년째다. 처음 1년은 애터미를 알아가는 시간이었고 그다음 4년은 자신도 모르는 채 앞만 보고 달려왔다. 지금은 시간을 조절할 수 있고 만족할 만한 수입도 생겼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행도 즐기고 있다. 새로운 정보를 얻고 사람들에게 애터미와 함께 인생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가르친다. 애터미를 하기 전에는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자유 시간이 없었다. 일하지 않으면 수입도 없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달라진 삶이다.
그녀의 목표는 임페리얼마스터가 되는 것이다. 모든 파트너들이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 애터미 덕분에 삶의 질이 향상되었고 아이들과 가까운 지인들에게 미래를 보장할 수 있으며 남편과의 노후 계획도 마련하게 되었다.
“앞으로 2년 후면 러시아 사람 두 명 중 한 명은 애터미 제품을 사용할 겁니다. 애터미가 곧 글로벌 H&B(헬스 앤 뷰티) 시장에서 넘버원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어요.”
애터미를 하면서 좋은 사람들을 많이 알게 됐고, 또 그들과 사이좋게 지내게 된 것이 무엇보다 기쁜 일이다. 타티아나 김은 애터미 사업을 “팀 스포츠 같다.”라고 얘기한다.
“모든 선수가 하나가 되어 뛰어야 경기에 이길 수 있지, 혼자 독불장군이 되어서는 성공을 보장받을 수 없어요. 구성원들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며 소통하고 서로 믿고 가족같이 함께 목표를 향해 나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타티아나 김이 애터미를 만난 지 꼭 5년째다. 처음 1년은 애터미를 알아가는 시간이었고 그다음 4년은 자신도 모르는 채 앞만 보고 달려왔다. 지금은 시간을 조절할 수 있고 만족할 만한 수입도 생겼다.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행도 즐기고 있다. 새로운 정보를 얻고 사람들에게 애터미와 함께 인생을 변화시키는 방법을 가르친다. 애터미를 하기 전에는 하루 24시간, 일주일 내내 자유 시간이 없었다. 일하지 않으면 수입도 없기 때문이다. 너무나도 달라진 삶이다.
그녀의 목표는 임페리얼마스터가 되는 것이다. 모든 파트너들이 자신의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 애터미 덕분에 삶의 질이 향상되었고 아이들과 가까운 지인들에게 미래를 보장할 수 있으며 남편과의 노후 계획도 마련하게 되었다.
2019년 러시아 법인 오픈 세레모니에서 통역을 맡았던 타티아나 김 로열마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