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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은퇴 후에도 아이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어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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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후에도 아이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어 기뻐요”
22년째 소년원 사역하고 있어 - 김선남·황종연 다이아몬드마스터
김선남 다이아몬드마스터는 대전에서 22년 동안 소년원 사역을 해왔다.소년원에 입소한 아이들의 엄마 역할을 해주는 일이었다. 처음에는 목회자의 아내로 봉사 사역을 시작했지만 11년 전 목사 안수를 받고 대전소년원 선교 목사가 되어 예배 사역까지 함께 하고 있다. 6년 전 애터미를 만난 이후 그의 소년원 사역 활동은 더 큰 힘을 얻게 되었다.
마음으로 낳은 아이들
22년 전, 소년원 사역을 처음 시작하던 김선남 다이아몬드마스터는 인생에서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남편 황종연 목사의 목회 일이 잘 안 되어 어려움을 겪었고 우울감도 몰려왔다. 그러던 중 목사 친구가 소년원 사역을 부탁해왔다. 처음에는 거절했지만 너무나 간곡하게 거듭 부탁을 하는 바람에 결국 그 일을 받아들였다.
“처음 봉사 사역을 갔을 때는 맨손으로 갔어요. 그런데 아이들이 간식을 기다리고 있더라고요.”
그런 곳에 봉사 사역을 가면 간식거리를 들고 가야 한다는 것도 뒤늦게 알았다. 안 그래도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200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먹을 간식을 준비한다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봉사 가기 전날인 금요일 밤, 마트가 문을 닫을 때쯤 찾아가 마지막 떨이로 싸게 판매하는 식자재들을 잔뜩 사들여 밤새도록 김밥을 싸고, 샌드위치를 만들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봉사 사역에 참여하다 보니 우울증 증세도 조금씩 누그러졌다. 무엇보다 자식처럼 돌본 아이들이 소년원을 나가서 잘됐다는 소식을 들을 때면 큰 보람을 느꼈다. 몇몇 친구들은 훌륭한 법조인이 되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22년 동안 수만 명의 아이가 그의 손을 거쳐 갔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아이가 하나 있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재혼해서 연락도 되지 않는 아이였다. 보호자인 큰아버지는 정신지체 3급인 그 아이를 정신병원에 보내겠다고 했다. 소년원에서 나와도 갈 곳이 없는 처지였다. 사정이 너무 딱하고 안타까워서 집으로 데리고 왔다. 이런저런 말썽들을 피우기도 했지만 그래도 가족처럼 3년 반을 함께 잘 살았다. 하지만 나이가 들자 독립해서 나가 살고 싶어 했다. 끝까지 만류했지만, 고집을 꺾지 못해 내보내고 말았는데 몇 달 후 뜻밖의 비보가 전해졌다. 돈을 벌겠다고 양식장에서 일하다가 배에서 떨어져 실종사고로 사망했다는 소식이었다. 마음으로 낳았던 아이를 그렇게 잃고 말았다.
소년원 사역에 도움 된다는 생각에 시작
가눌 수 없는 슬픔에도 소년원 사역을 멈출 수는 없었다. 그러던 중 애터미 사업을 소개받았다. 사업을 하면 소년원 사역을 하는 데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조언과 함께였다.“아무리 물건이 좋아도 다단계 제품은 안 먹고 안 쓰겠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우연히 헤모힘을 먹고 몸이 좋아지는 것을 느꼈어요. 바깥출입도 하지 못할 정도여서 인터넷을 통해 애터미를 찾아봤는데 막연하게 생각했던 것과는 달랐죠. 이런 회사의 제품이라면 안 쓸 이유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자본도 안 들어가는 사업이라 직접 해보고 싶은 마음이 들었죠.”
하지만 남편 황 목사는 이야기를 듣자마자 단박에 반대했다.
“우리 교회 집사님 중 한 분이 다단계 사업을 하다가 크게 망한 적이 있었어요.”
애터미 이야기도 못 꺼내게 했지만 “남들은 여행도 가는데 속리산 세미나에 가는 것도 한 번 안 가려고 하느냐”
는 아내의 말에 못 이겨 황 목사는 억지로 세미나에 따라나섰다. 그리고 그날 마음이 완전히 바뀌고 말았다.
“대한민국 기업 중에서 ‘영혼을 소중히 여긴다’라는 사훈을 가진 회사는 처음 봤습니다. 정직하고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있게 하는 사업이었습니다. 가입조건도 없고 어차피 사서 쓸 생필품을 소개하면 되는 사업이었어요. 게다가 품질은 좋은데 가격은 싸더라고요. 바로 허락을 했습니다.”
책자로 소개된 김선남·황종연 다이아몬드마스터의 소년원 사역
애터미 스폰서, 파트너들도 도움의 손길 보내
사람은 애터미를 만나고 삶이 180도 달라졌다고 말한다. 우선 두 사람 모두 정서적으로 안정을 찾게 되었고 헤모힘을 통해 건강도 좋아졌다. 또 나 혼자만이 아니라 너와 나, 우리 모두 함께 펼쳐나가는 사업이라는 점에 엄청난 감동을 받았다.
은퇴 목사로 연금소득이 조금 있다고 해도 두 사람 생활이 빠듯할 정도다. 소년원 사역은 꿈도 꾸지 못할 뻔했다. 하지만 애터미 사업을 하면서 수입이 늘어나 마음 편하게 사역을 할 수 있는 게 너무 기쁘다. 게다가 소년원 사역을 간다고 하면 스폰서와 파트너들이 후원금이나 간식을 지원해주니 마음이 더욱 든든하다.
부부가 운영하는 대전 가장동의 애터미 대전필센터는 은퇴한 목사들의 사랑방 역할을 하고 있다. 나이 많은 은퇴 목사들이라 직접 사업을 하긴 어렵지만 그래도 돌아갈 때 각 티슈 하나, 라면 한 박스라도 드릴 수 있어 너무 행복하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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