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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박한길,그리고 애터미 그 성장의 역사를 돌아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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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길,그리고 애터미 그 성장의 역사를 돌아보다
연재에 들어가며
첫걸음은 신용불량자들의 모임이었다. 그들에게 호언장담했던 허무맹랑한 이야기들을 하나하나 현실로 만들어가며 애터미는 이제 1조 매출을 넘어서는 글로벌 기업으로 우뚝 섰다. 어떻게 그리고 무엇이 애터미를 성장시킬 수 있었는가? 그 한가운데에는 애터미 최고의 브랜드이자 아이콘인 박한길 회장이 있다. 박한길 회장이 애터미를 어떻게 창업하고 성장 · 발전 시켰는지 그 과정을 연재한다.
Intro
지난 2016년을 기준으로 현재 한국의 네트워크마케팅 시장에서 가장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한국 기업은 단연 애터미이다. 2009년에 설립된 애터미는 창사 7년만인 2016년 기준 9100억 여 원의 글로벌 매출액을 자랑하고 있다. 또한 한국 네트워크마케팅 기업 가운데 최초로 3000만불 수출의 탑을 수상했으며 미국과 일본, 캐나다, 대만 등 해외 10개국에서 영업을 하고 있다. 애터미가 가지고 있는 기록은 이것뿐만이 아니다. 280만 명을 넘어서는 국내 최다 회원 수, 3년 연속 1000억원 넘게 판매된 네트워크마케팅 업계 최고 인기 제품보유, 업계 최저 반품률 0.14%, 매달 전국 7개 지역에서 연인원 1만 5000명 이상이 참석하는 석세스아카데미, 그리고 한국 네트워크마케팅 기업 중에서는 가장 많은 국가인 10개국에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지난 2016년 기준 1257억여 원의 해외 매출액을 달성했다. 한국 네트워크마케팅 기업으로서는 최다 해외매출액을 기록한 것이다. 이렇듯 한국의 네트워크마케팅 역사를 새로 쓰고있는 애터미를 창업한 사람은 바로 박한길 회장이다. 박한길 회장은 1956년 생으로 살레시오 고등학교와 경기대학교 야간학부를 졸업했다. 무모하다 싶을 정도로 저돌적인 추진력과 한 번 마음먹은 것은 반드시 해내고야 마는 끈기를 가지고 있으며 탁월한 사업적 감각과 왕성한 지적욕구를 소유하고 있는 인물이다.
Part1 야심찬 출발
박한길 회장이 네트워크마케팅을 처음 알게 된 것은 호주에서였다. 당시 몸담고 있던 회사의 해외 시장을 개척하기 위해 호주로 출장을 갔을 때, 현지 지인을 통해 만난 사람이 박한길 회장에게 네트워크마케팅을 권유했다. 그렇게 네트워크마케팅을 처음 접하게 된 박한길 회장은 좋은 제품을 싸게 판매하면서 소비자를 늘리고 다시 소비자가 사업자가 되어 새로운 소비자를 찾는다는 방식에 매료됐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네트워크마케팅을 떨쳐버리지 못한 박한길 회장은 서점에서 네트워크마케팅에 대한 서적을 구입, 독학으로 공부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생소한 용어와 개념들을 이해하기 쉽지 않았다. 관련 서적 7~8권을 읽고 나서야 비로소 네트워크마케팅에 대한 실체적인 개념이 손에 잡히기 시작했다. 하지만 책만으로는 한계를 느낀 박한길 회장은 호주에 있는 스폰서에게 국제전화를 걸어 물어보았다. 네트워크마케팅에 대해 충분히 알았다고 생각되자 박한길 회장은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고 네트워크 마케터로 변신했다. 이후 그는 특유의 워커홀릭 기질로 최고 직급인 퀸(Queen)을 달성하며 월 수천여 만 원의 수당을 받기도 했다. 거기에 만족하지 않은 박한길 회장은 네트워크마케팅 회사를 초월한 사업자단체 이른바 한국 네트워크마케팅 리더스클럽의 창설을 주도했으며 초대 회장으로 추대됐다. 한편, 바쁜 와중에도 박한길 회장은 네트워크마케팅 업계의 현실이 책과는 거리가 멀어도 너무 멀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었다. 책에서 말하는 원론적인 네트워크마케팅을 실행하고 있는 회사를 찾았으나 결국 찾지 못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IMF가 터졌다.
IMF 사태 때 운영하던 회사가 부도가 나자 박한길 회장은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구상했다.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쇼핑몰이었다. 그 당시 인터넷은 닷컴기업 열풍을 불러일으키며 산업 전반에 걸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었다. 특히 미국의 인터넷 서점 ‘아마존’의 돌풍을 보면서 책뿐만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는 시장에서 살 수 있는 모든 것을 전부 인터넷으로 살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인터넷이 유통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뒤바꾸게 될 것이라는 것을 직감한 박한길 회장은 인터넷으로 거의 모든 물건을 판매할 수 있는 쇼핑몰을 누구보다도 빨리 만든다면 대박을 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1999년, 박한길 회장은 야심만만하게 ‘아이엠코리아닷컴’을 출범시켰다.
아이엠코리아닷컴은 ‘Internetwork Marketing - Korea.com'의 약자이다. 박한길 회장은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인터넷 쇼핑몰로 키울 야심으로 ‘아이엠코리아닷컴’이라는 이름을 짓고 그에 걸맞게 오프라인에서 살 수 있는 거의 모든 제품을 판매할 계획을 세웠다. 각종 생필품이나 잡화 등의 공산품은 말할 것도 없고 쌀이나 생선, 고기 등의 농수축산물까지 챙기다 보니 판매할 상품의 가짓수만 10만여 개가 넘어갔다. 당시 가장 많은 상품을 취급하던 인터넷 쇼핑몰은 한솔CS클럽으로 취급 품목이 7만여 가지였으며 롯데인터넷쇼핑몰은 2000여 종, 현대인터넷쇼핑몰은 5000여 종의 상품을 취급하고 있었다. 박한길 회장은 아이엠코리아닷컴이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랬기 때문에 아이엠코리아닷컴에 모든 것을 쏟아 부었다. 관리비를 한솔CS클럽 등의 인터넷 쇼핑 전문기업의 10분의 1 수준으로 줄였고 네트워크마케팅의 수당체계를 원용한 획기적인 인센티브 제도도 도입했다.
Part 2 반 발짝만 앞서야 했다
얘기하자면 아이엠코리아닷컴은 실패로 끝나고 말았다. 실패의 원인은 간단했다. 너무 앞서 간 것이다. 박한길 회장 말대로 딱 반보만 앞서 가야 했는데 몇 발자국을 앞서가다 보니 인프라도 소비자들도 따라오기가 버거웠던 것이다. 시대를 너무 앞서가서 생긴 실패였다. 지금이야 인터넷도 기가급의 스피드를 표방하고 있고 스마트폰으로 쇼핑을 즐기는 모바일 시대라고 하지만 1999년의 인터넷 환경은 하품이 나올 정도였다. 인터넷 환경은 지금의 초고속인터넷과는 거리가 먼 ISDN1)이 주류였으며 하나로통신에서 ADSL2)을 상용화해 이제 막 시작되는 단계였다. 인터넷 속도는 103)Mbps도 채 되지 않았으며 컴퓨터도 펜티엄2가 최신형 취급을 받고 있었고 모니터도 LCD가 아닌 15인치 브라운관 모니터가 대세였다. 휴대폰은 스마트폰과는 거리가 먼 폴더형이나 플립형이 대세였다.시대가 이렇다 보니 인터넷 쇼핑은 소비자들에게 생소한 유통 채널에 불과했다. 몇몇 얼리어댑터(Early Adaptor)들이나 IT 관계자를 제외한 대부분의 소비자들에게 인터넷쇼핑은 미래의 일일뿐이었고 현실은 여전히 오프라인 쇼핑이 주류였다.
인터넷 쇼핑에 대한 통계를 봐도 1999년은 통계조차 작성되지 않은 때였다. 인터넷 쇼핑을 포함한 온라인 쇼핑에 대한 통계는 2001년부터 작성되기 시작했는데 2001년 온라인 쇼핑 총 매출액은 3조 3500억원에 불과했으며 우리나라 전체 소매매출 총액 196조원 중 1.7%에 그치는 수준이었다. 반면, 지난 2016년의 온라인 쇼핑 총매출액은 65조 6000억원으로 385조원에 달하는 소매매출 총액 중 17%를 차지하고 있어 1999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수치였다. 그나마 1999년의 온라인 쇼핑 규모는 2001년보다 훨씬 적었을 것이다.정리하자면 1999년 당시 인터넷 쇼핑은 블루오션이라기보다는 이제 막 싹이 움트고 있는 시장이었다.
이러한 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본과 기술의 지속적인 뒷받침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소비자들이 인터넷 쇼핑에 익숙해지고 인터넷 환경과 배송 등 제반 인프라가 충분히 갖춰질 때까지 계속해서 투자가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당시 아이엠코리아닷컴을 제외하면 가장 많은 7만여 가지의 상품을 취급한 한솔CS클럽의 경우, 1999년 12월에 인터넷 쇼핑몰 업체로서는 처음으로 회원이 100만 명을 넘어서는 등 가장 앞서 나갔지만4) 이후 5년 만인 2004년 7월, 한솔CS클럽은 개인사모펀드 에이스홀딩스에 매각됐으며 지금은 그 이름을 기억하는 사람조차 찾기 힘들어졌다. 반면 유통전문 대기업에서 운영한 롯데인터넷쇼핑몰과 현대인터넷쇼핑몰은 지금까지 건재하고 있다.
아이엠코리아닷컴의 창업과 실패는 박한길 회장이 얼마나 원대한 꿈을 가지고 있었는지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한 자질로 저돌적인 행동력을 갖추고 있었음을 여실하게 드러내준다. 아직 형성되지도 않은 시장을 미리 예측하고 과감하게 뛰어든 것은 다가올 유통의 변화를 미리 읽었기 때문이다. 또 전문유통 기업이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에서도 엄두를 못 낸 10만 여종의 상품을 구비한 것은 생산자와 소비자를 잇는 허브로써의 역할을 자임한 것이다. 어쩌면 박한길 회장은 아이엠코리아닷컴을 시작할 때 이미 절대품질 절대가격의 원칙을 세웠는지도 모른다. 관리비를 인터넷 쇼핑 전문기업의 10% 수준으로 줄이고 네트워크마케팅을 원용한 인센티브를 도입한 것을 보면 짐작이 가는 대목이다. 아무튼 너무 빨랐기에 이루지 못한 아이엠코리아닷컴의 경험은 이후 애터미를 창업하는 밑거름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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