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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애터미, 새로운 삶의 기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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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터미, 새로운 삶의 기점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한 번 더 만나라
“내 삶의 기점은 언제였을까를 생각해보면 김성일 임페리얼마스터가 제게 애터미를 소개한 그 날이 아닌가 합니다” 그날, 김성일 임페리얼마스터에게 홍연구 임페리얼마스터가 한 말은 ‘내 얼굴을 봐라. 화장품이나 건강기능식품을 판다는 것이 가당키나 하겠냐'였다. 깡마르고 왜소한 체구에 얼굴빛은 보기에도 안쓰러울 만큼 검었다. 화재로 인한 가구공장의 파산, 그리고 남은 빚을 갚느라 몸도 마음도 무너져 있었다.
임페리얼마스터까지 11년
회원 번호 16번이라고 하면 다들 전설의 오리탕집 멤버인 줄 안다. 그런데 아니다. “못 간 거예요. 차비가 없었거든요.” 순탄한 삶이었었다. 어렵지 않게 어린 시절을 보냈고 젊어서 연 가구공장도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잘됐다. 하지만 나락으로 떨어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불시에 발생한 가구공장의 화재, 그 후의 삶은 삶이 아니라 버티기였다. “택시기사도 해 보고 시골 오일장에 노점도 해보고 그저 목구멍에 풀칠하기에 여념이 없었어요.”그런 생활에 지칠 대로 지쳐갈 무렵 김성일 임페리얼마스터가 익산에서 마산까지 와서는 애터미를 소개해줬다.
뒤이어 박정수 임페리얼마스터와 박용옥 임페리얼마스터까지 찾아와 애터미 할 것을 권유했다. 사실 마뜩잖았다. 브랜드도 없는 화장품, 들어 본 적 없는 건강식품, 허풍처럼 보이는 회장님 말씀… “그런데 헤모힘을 먹고 건강이 좋아졌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애터미 사업을 하게 되었죠.”마산에서 천안으로 본거지를 옮겼다. “아는 사람에게 거절당하면 더 창피하잖아요. 마음에 남는데 모르는 사람은 돌아서면 그만이니까. 차라리 모르는 사람에게 갔어요.” 죽기 살기로 했다. 내 생애 마지막 사업이고 기회라는 생각뿐이었다. 닥치는 대로 명함을 뿌리고 조금이라도 연이 닿았다 싶으면 끈질기게 설득했다. 낮이면 버스를 타고 천안을 온통 헤집고 다녔고 저녁이면 그날의 기록을 일일이 작성해 본사에 팩스로 보냈다. “12시 마감을 치고 나면 새벽 2~3시가 되면 돈이 들어와요. 회장님이 그때까지 안 주무시고 바로 수당을 주시는 거예요.”그렇게 11년을 애터미 사업에 매진한 결과, 전 세계 1500만 애터미인들이 염원하는 ‘임페리얼마스터’가 되었다.
난 참 복이 많은 사람
지난 4월 16일, 임페리얼마스터가 됐다는 연락을 받았다. 그토록 고대했던 소식이지만 그 순간, 마음은 오히려 차분해졌다. “됐구나 하고 마음을 놓는 순간 울컥하더라고요. 그리곤 지난 세월이 주르륵 떠올라서…” 양손에 얼굴을 파묻고는 미동도 없이 한참을 있었다. “11년 동안 오로지 한곳을 보며 달렸어요. 감사한 분들 두루두루 생각나고 성취감도 느껴지고… 이제 이뤘구나. 복합적인 느낌이 들었어요”
임페리얼마스터까지, 특별한 노하우가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그저 무조건 좋으니까 먹어봐라. 발라 보라는 것이 다였다. “먹고 안 좋으면 반품해. 그게 제 주특기였어요. 왜 그렇게 했냐면 한번 발라 보면 계속 쓸 거라는 자신이 있었거든요” 한국만으로는 좁았다. 영어 한마디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미국으로 갔고 아는 사람 하나 없는 동남아를 헤집고 다녔다. 제심합력이 없었다면 어쩌면 홍연구 임페리얼마스터의 글로벌 비즈니스는 꿈도 꾸기 힘들었을 터다.
홍연구 임페리얼마스터는 스스로 ‘복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했다. 애터미를 소개해주고, 함께 하자고 끝까지 설득해주고, 파트너 하나 없어도 미국으로 동남아로 멀다 않고 후원 활동을 해주고, 방향을 벗어나면 벗어났다고 알려주고 가르쳐 준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애터미다. “제심합력의 애터미가 아니었으면, 김성일, 박정수, 박용옥 임페리얼마스터가 아니었으면, 회장님이 아니었으면 그리고 수많은 파트너가 아니었으면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었을까요? 그 수많은 사람과 함께 하고 있고 응원받고 있으니 참 복이 많은 사람이죠.”
인생시나리오, 임페리얼마스터의 출발점
“애터미하고 나서 바뀐 거요? 독촉장이 안 날아오는 거죠.” 애터미를 하고 나서 얼마 안 가 우편함에 쌓이던 독촉장이 사라졌다. “어머니가 가장 즐거워하세요.” 가장 노릇 제대로 하는 것 그게 가장 먼저 생각나는 변화다. 아들 등록금이 없어 군대에 보내야 했던 아픔도 추억이 됐다. 그리고 또 하나는 맨주먹으로 일군 글로벌 비즈니스 노하우다. 누구보다 먼저 글로벌 비즈니스를 시작했고, 성공을 거뒀다. 그 노하우를 필요로 하는 애터미 회원이 있다면 언제든지 전수해 줄 생각이다.

“강의는 아직 자신 없어요. 하지만 상담을 해오면 얼마든지 컨설팅해 줄 수 있어요”홍연구 임페리얼마스터는 요즘 매일 해외로 나간다. ZOOM 미팅을 하는 것이다. “코로나19? 별 문제 되지 않았어요” 임페리얼마스터 달성도 어쩌면 코로나19 덕인지도 모른다. 그런 그의 글로벌 비즈니스 노하우의 핵심은 뭘까. 절대로 포기하지 말고 인내심을 기르는 것, 그리고 목표를 잡고 사람을 한 번 더 만나는 것이다. 굳이 글로벌 비즈니스 노하우랄 것도 없다. 애초에 애터미 비즈니스는 글로벌이나 로컬이나 다를 바가 없다.지금도 홍연구 임페리얼마스터는 매일 인생시나리오를 쓴다. 그의 첫 인생시나리오에는 ‘회원 수 100명’, ‘월 매출 1억’, ‘센터 30개’, ‘스타마스터’라고 적혀 있다. “스타마스터는 오토판매사라고 쓰면 너무 작아 보이니까 그렇게 쓴 거예요. 그때 스타마스터는 진짜 꿈이었죠. 인생시나리오를 쓰는 순간, 절반은 성공한 거예요.” 그 인생시나리오가 홍연구 임페리얼마스터가 되는 출발점이 된 것이다. “매일 인생시나리오를 쓰다 보면 거절당할 용기가 생겨요. 그때부터 진짜 애터미 사업이 시작되는 겁니다.” 거절당할 용기가 생기면 삶의 변화가 시작된다. “그 변화가 저를 임페리얼마스터로 만들었듯 전 세계 1500만 애터미 회원 모두의 임페리얼마스터를 향한 출발점이 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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