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내가 선택한 N잡 애터미
내가 선택한 N잡 애터미
최근 몇 년 동안 코로나로 인해 많은 사람들의 생활이 적잖이 바뀌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변화라고 한다면, 아마도 거리 두기로 인해 집에서 가족과 지내는 시간이 늘어나게 된 것이라 생각된다. 거리 두기는 집에서 간단하게 조리할 수 있는 밀키트 등의 HMR 시장과 함께 각종 배달서비스 시장을 기하급수적으로 키웠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혹자는 돈을 벌었을 테고 혹자는 돈을 손해 받을 테다. 하지만 아마도 손해 본 사람이 더 많으리라. 나 또한 돈을 손해 보았으니까 말이다.
애터미를 만난 것은 그즈음이다.
팬데믹이 닥치기 전에는 나름 맛집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큰 무리 없이 식당을 운영하며 부자는 아닐지언정 그리 부족한 삶은 아니었다. 그러다 팬데믹이 닥쳤다. 사스나 메르스를 겪어봤던 타성 때문일까? 별다른 걱정 없이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팬데믹이 터지고나자 불행은 연이어 찾아왔다. 첫돌도 되지 않은 아들은 대학병원에서 큰 수술을 해야 했으며 어머니 또한 무리한 식당 운영으로 인해 어깨와 발목에 2차례 수술을 하게 되었다. 아내는 산후 우울증이 와서 병원 상담을 다녔고 살고 있던 아파트도 문제가 생겨 이사를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2020년을 지나 보내고 나니 식당 매출은 반 토막이 나 있었고 통장은 마이너스가 되어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은 위탁판매에 밀키트 사업 등 온갖 다양한 일거리들을 찾고 경험해보게 했다. 그러나 어느 것도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결국 반포기 상태로 팬데믹이 종식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처가 큰 이모님께서 애터미를 소개했다.
다단계라는 것을 알고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창 시절 부모님께서 다단계 사업을 시작하면서 안 그래도 어려운 형편이 더욱 어려워졌던 기억 때문이었다. 하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7년 전 애터미를 한차례 권유한 적이 있었던 아내 탓도 있었다. 그날 나는 내 앞에서 다단계는 절대 얘기하지 말라며 크게 호통을 쳤지만 여전히 아내는 애터미에 큰 신뢰를 갖고 있었으며 박한길 회장님의 신앙심과 경영 철학을 좋아하고 있었다.
정보나 우선 알아보자는 생각에 여러 자료를 찾았다. 그중에 다단계 피해 등과 같이 부정적인 정보를 집중적으로 알아보았다. 그러나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진짜 되는 거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제품은 알아볼수록 ‘왜 지금까지 이걸 안 써봤지?’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더욱이 애터미는 투자금 없이 부부 부업으로도 애터미 제품을 사용하면서 주위에 조금만 알려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내가 찾아본 것은 부정적인 것들인데 나에게는 긍정적으로 다가왔으며 알아볼수록 더욱 빠져들게 되었다.
실전이 어떤지 궁금해서 처가 이모님께 사업하시는 분을 소개해달라고 했다. 그렇게 지금의 나를 열심히 도와주는 스폰서님을 만났다. 그렇게 하나씩 집에서 사용되는 생필품 등을 애터미 제품으로 바꿔 사용해보면서 왜 대중명품이라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애터미를 소개하기란 쉽지 않았다. 나는 가방끈도 짧은 데다가 다혈질이라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게다가 호감 가는 외모도 아니어서 누군가에게 애터미를 소개한다는 것은 상상하기에도 수월찮은 일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간절함이 있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만 한다는 간절함은 내 마음속에 일고 있던 수많은 장애물을 모두 뛰어넘고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매일 센터에 가지는 못했지만 매주 한 번은 꼭 가야 한다는 생각에 센터를 찾았고, 제품 강의와 성공 스토리를 들으며 한발 한발 사업을 진행해 나갔다. 진행하면서 조금 힘겨웠던 적이 있다. ‘정말 이게 나는 안 되나?, 왜 이렇게 어렵지?, 더 이상 누구한테 말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거절당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고, 제품과 애터미를 소개한다는 것이 아쉬운 소리 하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고민 끝에 스폰서에게 털어놓았다.
스폰서는 “왜 소개하기가 힘들까요?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비싼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닌 990원짜리 칫솔을 소개하는 거예요. 그런데 제품도 너무 좋아요. 우린 좋은 제품, 좋은 이유를 설명하면 되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서야 ‘지 맘의 법칙’을 깨달았다. 소개하는 것은 ‘내 맘’이지만 받아들이는 것도 거절하는 것도 다 ‘지 맘’이다. 평양 감사도 지 싫으면 그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생각을 고치고 지금은 아내의 응원을 받으며 즐겁게 애터미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당장은 부업이라 느릴 수도 있다. 하지만 애터미라는 부업은 본업에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가능하며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어 언젠가는 본업과 부업이 바뀔 것이라 믿는다. 나는 N잡으로 애터미를 선택했다. 아직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직급도 없이 부업으로 하고 있지만 꿈은 임페리얼마스터를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다.
애터미를 만난 것은 그즈음이다.
팬데믹이 닥치기 전에는 나름 맛집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큰 무리 없이 식당을 운영하며 부자는 아닐지언정 그리 부족한 삶은 아니었다. 그러다 팬데믹이 닥쳤다. 사스나 메르스를 겪어봤던 타성 때문일까? 별다른 걱정 없이 아무런 대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팬데믹이 터지고나자 불행은 연이어 찾아왔다. 첫돌도 되지 않은 아들은 대학병원에서 큰 수술을 해야 했으며 어머니 또한 무리한 식당 운영으로 인해 어깨와 발목에 2차례 수술을 하게 되었다. 아내는 산후 우울증이 와서 병원 상담을 다녔고 살고 있던 아파트도 문제가 생겨 이사를 나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그렇게 정신없이 2020년을 지나 보내고 나니 식당 매출은 반 토막이 나 있었고 통장은 마이너스가 되어 있었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은 위탁판매에 밀키트 사업 등 온갖 다양한 일거리들을 찾고 경험해보게 했다. 그러나 어느 것도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결국 반포기 상태로 팬데믹이 종식되기만을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에 처가 큰 이모님께서 애터미를 소개했다.
다단계라는 것을 알고 당연히 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학창 시절 부모님께서 다단계 사업을 시작하면서 안 그래도 어려운 형편이 더욱 어려워졌던 기억 때문이었다. 하지만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었다. 7년 전 애터미를 한차례 권유한 적이 있었던 아내 탓도 있었다. 그날 나는 내 앞에서 다단계는 절대 얘기하지 말라며 크게 호통을 쳤지만 여전히 아내는 애터미에 큰 신뢰를 갖고 있었으며 박한길 회장님의 신앙심과 경영 철학을 좋아하고 있었다.
정보나 우선 알아보자는 생각에 여러 자료를 찾았다. 그중에 다단계 피해 등과 같이 부정적인 정보를 집중적으로 알아보았다. 그러나 알아보면 알아볼수록 ‘이게 어떻게 가능하지? 진짜 되는 거 맞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제품은 알아볼수록 ‘왜 지금까지 이걸 안 써봤지?’ 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더욱이 애터미는 투자금 없이 부부 부업으로도 애터미 제품을 사용하면서 주위에 조금만 알려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생각해도 정말 신기한 일이었다. 내가 찾아본 것은 부정적인 것들인데 나에게는 긍정적으로 다가왔으며 알아볼수록 더욱 빠져들게 되었다.
실전이 어떤지 궁금해서 처가 이모님께 사업하시는 분을 소개해달라고 했다. 그렇게 지금의 나를 열심히 도와주는 스폰서님을 만났다. 그렇게 하나씩 집에서 사용되는 생필품 등을 애터미 제품으로 바꿔 사용해보면서 왜 대중명품이라고 하는지 알 수 있었다.
하지만 막상 애터미를 소개하기란 쉽지 않았다. 나는 가방끈도 짧은 데다가 다혈질이라 말을 조리 있게 잘하는 사람도 아니었다. 게다가 호감 가는 외모도 아니어서 누군가에게 애터미를 소개한다는 것은 상상하기에도 수월찮은 일이었다. 하지만 나에겐 간절함이 있었다.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다해야만 한다는 간절함은 내 마음속에 일고 있던 수많은 장애물을 모두 뛰어넘고 앞으로 나아가게 했다. 매일 센터에 가지는 못했지만 매주 한 번은 꼭 가야 한다는 생각에 센터를 찾았고, 제품 강의와 성공 스토리를 들으며 한발 한발 사업을 진행해 나갔다. 진행하면서 조금 힘겨웠던 적이 있다. ‘정말 이게 나는 안 되나?, 왜 이렇게 어렵지?, 더 이상 누구한테 말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거절당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았고, 제품과 애터미를 소개한다는 것이 아쉬운 소리 하는 것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고민 끝에 스폰서에게 털어놓았다.
스폰서는 “왜 소개하기가 힘들까요? 어렵게 생각할 필요가 없어요. 비싼 제품을 파는 것이 아닌 990원짜리 칫솔을 소개하는 거예요. 그런데 제품도 너무 좋아요. 우린 좋은 제품, 좋은 이유를 설명하면 되는 거예요!”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듣고서야 ‘지 맘의 법칙’을 깨달았다. 소개하는 것은 ‘내 맘’이지만 받아들이는 것도 거절하는 것도 다 ‘지 맘’이다. 평양 감사도 지 싫으면 그만이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렇게 생각을 고치고 지금은 아내의 응원을 받으며 즐겁게 애터미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당장은 부업이라 느릴 수도 있다. 하지만 애터미라는 부업은 본업에 부담이 되지 않는 선에서 가능하며 언제 어디서든 할 수 있어 언젠가는 본업과 부업이 바뀔 것이라 믿는다. 나는 N잡으로 애터미를 선택했다. 아직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직급도 없이 부업으로 하고 있지만 꿈은 임페리얼마스터를 바라보며 달려가고 있다.
배주성
에이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