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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아무나 성공한다는 애터미, 그 아무나가 바로 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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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나 성공한다는 애터미, 그 아무나가 바로 나였다
초졸에 신용불량, 그리고 암 환자였던 강영희, 70에 임페리얼마스터 되다
“화장품이고 헤모힘이고 그땐 발라보지도 먹어보지도 못하고 팔았어요. 워낙 없이 시작하는 바람에 하나 사면 얼른 팔아야 끼니를 때울 수 있었거든요” 고희연을 앞두고 임페리얼마스터를 달성한 강영희 임페리얼마스터의 얘기다. 애터미 초창기 회원들이 거의 그렇듯, 제품 하나 마음 놓고 써 볼 수도 없을 만큼 극한 상황에서 애터미를 만났다. 성공까지는 순탄치 않았다. 초등학교 졸업에 신용불량자, 게다가 암 환자였기 때문이다.
강영희 임페리얼마스터는 배우자 박영관 임페리얼마스터가 해외에서 벌어 송금한 돈마저도 수차례의 네트워크마케팅을 통해 모조리 까먹고 나서 애터미를 시작했다. 내 생애의 마지막 네트워크마케팅이라고,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고 확신했다. 믿었던 것은 박한길 회장뿐이었다. 박한길 회장이 사업자를 하던 시절 업계에서 오가다 얼핏 본 느낌은 믿고 따를만한 스폰서였다. 애터미를 처음 소개 받았을 때에도 제품이나 보상플랜보다 박한길 회장이 한다는 이야기에 불문곡직 사인했다. 그리고 십수 년, 드디어 임페리얼마스터의 자리에 올랐다.
내가 아니라 파트너들의 힘
강영희 임페리얼마스터는 애터미가 아니었다면 자신의 성공은 불가능했다고 확신한다. 박한길 회장에 대한 믿음 때문에 덜컥 애터미 사업을 시작했지만 정작 자신은 제품 한 번 팔아보지도, 그렇다고 사람들을 센터나 세미나에 데려오지도 못했다. 하지만 믿는 구석은 있었다. 사람만 데려오면 사업설명만큼은 누구에게도 지지 않을 것이란 자신감이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 애터미를 시작했을 때의 진행은 불안할 정도로 더뎠다. 그 더딘 사업의 숨통을 해외에서 돌아온 남편 박영관 임페리얼마스터와 동네 세탁소 주인이었던, 첫 번째 파트너가 생기면서 틔였다.
박영관 임페리얼마스터는 이국만리에서 열심히 벌어 송금한 돈은 아내의 네트워크마케팅 사업에 흔적도 없이 사라졌지만, 그래도 애터미를 한다며 돌아다니는 아내에게 화내지 않았다. 아내를 믿고 아내의 사업을 도와주리라 마음먹었다.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기도 했다. 딱히 취직할 곳도 없었을뿐더러, 반드시 성공할 수 있다는 아내의 말을 듣다 보면 성공할 것도 같았다. 그런 마음으로 귀국 후 처음 만난 동창들의 모임에서 애터미 제품을 판매했고, ‘거금’ 60만 원가량의 매출을 올렸다. 그게 ‘되겠지’에서 ‘된다’는 것으로 변화의 트리거가 됐다. 그리고 얼마 후, 강영희 임페리얼마스터는 동네 세탁소 주인을 파트너로 맞이하며 성장의 신호탄을 쐈다. 그 동네 세탁소 주인이 바로 배경숙 크라운마스터였다.
“배경숙 크라운마스터는 사람은 잘 데리고 오는데 사업설명을 못한다고 했어요. 나는 그 반대였죠. 누구든 데려만 놓으면 얼마든지 설명할 자신이 있었어요. 그러니까 배경숙 크라운 마스터가 그러더라고요. ‘사장님 저는 찍새 할 테니까 사장님이 딱새를 하세요’” 그러면서 둘은 배꼽이 빠지게 웃었다고 했다. “내가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파트너들 덕분인 거죠”
파트너도 스폰서도 마냥 예뻐 보이는 긍정 마인드
초창기 사업 진행은 지지부진하고 당연한 듯 하루하루 버티기조차 빠듯한 생활, 강영희 & 박영관 임페리얼마스터를 붙잡아 준 것은 천연덕스러울 만치 몸에 밴 ‘긍정의 마인드’였다. 길에 나앉기 직전의 궁핍함에서도, 사람 하나 데려오지도, 제품 하나 판매하지도 못하는 답답함 속에서도, 암 투병을 하는 와중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는 신념은 꺾이지 않았다. “아직은 때가 오지 않았을 뿐 언젠가는 반드시 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왜냐하면 박한길 회장님을 믿었고, 제품이 팔리는 것을 눈으로 직접 봤기 때문이에요”
강영희 임페리얼마스터의 긍정적인 마인드는 또 다른 곳에서 더욱 빛을 발했다. 바로 파트너들과의 관계에서다. 애터미 사업은 제심합력의 사업이다. 제심합력을 위해서는 스폰서와 파트너 간의 소통이 필수불가결한 요소다. 아무리 성공을 위해 만들어진 조직이지만 저마다의 사정은 각양각색이다. 부딪히고 상처를 주고받다 보면 싫어지고 미워지고 급기야는 피하고 싶어질 수도 있다. 강영희 임페리얼마스터의 긍정의 마인드는 이런 상황을 미연에 방지한다.
“긍정의 마음으로 싹 바꾸고 나면 서운한 것도, 상처가 될 만한 것도 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겠지’하게 되요. 그러면 마음이 편해져요. 파트너들도 예뻐 보이고 스폰서가 멋져져요” 파트너가 예뻐지고 스폰서가 멋져지면 남은 것은 하나다. 모두의 힘으로 모두의 성공을 향해 가는 것. 그렇게 강영희 & 박영관 임페리얼마스터가 탄생한 것이다. “9호 임페리얼마스터까지는 당연히 갈 만한 사람이라고 인정이 되는 사람들이잖아요. 근데 저는 아니에요. 이게 참 중요한 거예요. 저는 회장님이 말하고 많은 사람들이 말하듯이 애터미는 누구나 성공하고 아무나 성공한다는 그 아무나이고 그 누구나 예요. 왜냐하면 초등학교 밖에 다니지 못해 공부를 못했고, 신용불량자였고, 암 환자였고 거기에 나이도 70이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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