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ICLE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이성연의 경제이야기]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인가 아니면 고정관념과 편견에 휘둘리는 존재인가? 전통적 경제학에서는 인간을 전자라고 가정하고 아주 아름다운 이론을 전개했다. 그러나 인간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가정하고 만들어진 이론들이 많은 국면에서 인간의 행동을 설명할 수 없게 됨에 따라 새로운 연구들이 계속 이뤄졌고 그 결과 인간은 후자에 가깝다는 인식에 이르게 됐다. 대표적인 이론이 행동경제학이다. 인간의 비이성적 행동은 나이나 학력의 고하 그리고 직업이나 지식의 정도와는 무관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해관계를 달리 하는 집단들 예를 들면 정파, 노사, 종교, 각종 시민단체들 간에 TV나 청문회 등에서 토론하는 장면을 지켜보면 각자 일방적인 주장만 계속할 뿐 상대방의 의견은 귀담아 듣지를 않는다. 그러니 전혀 의견접근이 이뤄지지 않고 논쟁만 하다가 토론이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심리적 성향 중 하나인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는 기울어짐 때문이다. 확증편향이란 심리학 용어로 자신의 견해와 일치하는 또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정보는 쉽게 받아들이지만 자신의 견해나 주장에 위배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자신의 의견에 맞게 왜곡해버리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확증편향으로 인해 토론 참석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에 유리한 증거만을 제시하고 상대방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평가절하하거나 무시해버리기 때문에 논쟁만 계속되는 것이다. 심지어는 상대방 주장에 유리한 증거라도 왜곡해 자기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궤변을 늘어놓기도 한다. 확증편향은 한마디로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다. 또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만 보이는 것’이다. 또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이다. 이런 확증편향으로 인해 사회는 항상 편 가르기와 논쟁이 그칠 날이 없다.
의사결정의 오류를 가져오는 요인 중 하나가 증거 찾기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증거 찾기 함정(confirming evidence trap)이란 확증편향에 따른 행동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문제의 진정한 본질이 무엇인지를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자신의 희망사항을 마치 본질인양 생각하는 태도이다. 증거 찾기 함정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지지해줄 만한 사람의 의견을 청취하려 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시켜 줄 수 있는 정보만을 찾으려 한다. 이와 같이 어떤 정보원(情報源)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수집한 정보를 해석하는 방법에도 영향을 미친다. 즉 자신의 견해에 부합하는 정보는 아주 중요하고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자신의 견해에 배치되는 정보는 그 신빙성과 가치를 고의적으로 평가절하 해버리는 것이다. 그 결과 매우 부적절한 의사결정이 이뤄지게 된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여기에는 두 가지의 근본적인 심리적 요인이 작용한다고 한다. 첫 번째 심리적 요인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무의식적으로 결정한 후에 그것을 하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려는 인간의 성향이다. 두 번째 심리적 요인은 좋아하지 않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것에 더 적극적으로 끌리는 인간의 성향이다. 이러한 성향은 어린 아이에게서 쉽게 볼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잠재적인 지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정보에 이끌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사회에서 어떤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이슈로 논쟁이 벌어지는 경우 끝도 없는 대립이 계속되는 것은 바로 우리사회에 존재하는 과도한 흑백논리와 더불어 극심한 확증편향 때문이다. 만일 어떤 이슈에 대해 두 편으로 갈라져 논쟁이 이뤄지는 경우 필연적으로 집단광기가 발생해 이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궤변으로 흐르게 된다. 이때 만일 상대편이 논박할 수 없는 실증적 근거를 제시하면 승복할까? 그렇지 않다. 이때는 허수아비 때리기나 인신공격으로 더욱 극렬하게 덤벼든다. 허수아비 때리기(straw man fallacy)란 상대방의 입장과 피상적으로는 유사하지만 사실은 비동일한 명제(곧, 허수아비)를 임의로 만들어서 반박논리를 펴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갑이 “난 맑은 날이 좋아”라고 말했다면, 을은 이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 “맑은 날만 계속된다면 비가 오지 말아야 된다는 건대, 이건 모두 굶어죽자는 주장과 같다”는 식으로 논박하는 것이다. 갑이 비가 안 내려고 된다거나 다 굶어죽자는 뜻으로 말한 적이 없는데 상대방을 논박하기 위한 허수아비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마구 때리는 것이다. 사드 배치문제 등 안보논쟁에서 이런 경우가 많다.
한편 인신공격이란 논리적 오류의 하나인데 상대방의 주장에 객관적 증거가 있고 어떤 흠을 잡기가 어려울 때 동원하는 수법으로 논쟁의 방향을 문제 그 자체보다는 상대방 인물로 돌려서 공격함으로써 상대방의 논리를 신뢰할 수 없다는 식으로 덤벼드는 것을 말한다. 즉 상대방의 학력, 인품, 직업, 과거의 행적, 말실수 등을 들춰내 그런 사람이 제시한 증거는 믿을 수 없다는 식이다. 국가든 사회든 또는 어떤 조직이든 확증편향으로 인해 편 가르기와 비타협적인 논쟁이 벌어질 개연성은 언제든지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파편화가 지속되면 다 함께 쇠락의 길로 가게 된다. 이때 필요한 게 리더와 리더십이다. 리더는 중간자적 입장에서 양쪽의 주장을 듣고 이성적 판단을 내려 국가나 사회 그리고 조직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줘야 한다. 그러면 모두 발전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그런데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편 가르기를 조장하고 어느 한쪽 편에 가담해 논쟁을 부추긴다면 국가든 사회든 조직이든 망하는 길로 나아가게 된다. 이런 연유로 과학기술의 폭발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리더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는 것이다.
인간은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존재인가 아니면 고정관념과 편견에 휘둘리는 존재인가? 전통적 경제학에서는 인간을 전자라고 가정하고 아주 아름다운 이론을 전개했다. 그러나 인간을 이성적이고 합리적이라고 가정하고 만들어진 이론들이 많은 국면에서 인간의 행동을 설명할 수 없게 됨에 따라 새로운 연구들이 계속 이뤄졌고 그 결과 인간은 후자에 가깝다는 인식에 이르게 됐다. 대표적인 이론이 행동경제학이다. 인간의 비이성적 행동은 나이나 학력의 고하 그리고 직업이나 지식의 정도와는 무관하게 나타나는 현상이다. 이해관계를 달리 하는 집단들 예를 들면 정파, 노사, 종교, 각종 시민단체들 간에 TV나 청문회 등에서 토론하는 장면을 지켜보면 각자 일방적인 주장만 계속할 뿐 상대방의 의견은 귀담아 듣지를 않는다. 그러니 전혀 의견접근이 이뤄지지 않고 논쟁만 하다가 토론이 끝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심리적 성향 중 하나인 확증편향(confirmation bias)이라는 기울어짐 때문이다. 확증편향이란 심리학 용어로 자신의 견해와 일치하는 또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정보는 쉽게 받아들이지만 자신의 견해나 주장에 위배되는 정보는 무시하거나 자신의 의견에 맞게 왜곡해버리는 현상을 말한다. 이러한 확증편향으로 인해 토론 참석자들이 자신들의 주장에 유리한 증거만을 제시하고 상대방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는 평가절하하거나 무시해버리기 때문에 논쟁만 계속되는 것이다. 심지어는 상대방 주장에 유리한 증거라도 왜곡해 자기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궤변을 늘어놓기도 한다. 확증편향은 한마디로 ‘있는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것’이다. 또 ‘보이는 것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는 것만 보이는 것’이다. 또 ‘사실을 믿는 것이 아니라 믿고 싶은 것만 믿는 것’이다. 이런 확증편향으로 인해 사회는 항상 편 가르기와 논쟁이 그칠 날이 없다.
의사결정의 오류를 가져오는 요인 중 하나가 증거 찾기 함정에 빠지는 것이다. 증거 찾기 함정(confirming evidence trap)이란 확증편향에 따른 행동으로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문제의 진정한 본질이 무엇인지를 찾으려는 노력보다는 자신의 희망사항을 마치 본질인양 생각하는 태도이다. 증거 찾기 함정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자신의 생각을 지지해줄 만한 사람의 의견을 청취하려 하고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시켜 줄 수 있는 정보만을 찾으려 한다. 이와 같이 어떤 정보원(情報源)을 선택할 것인가 하는 문제뿐만 아니라 수집한 정보를 해석하는 방법에도 영향을 미친다. 즉 자신의 견해에 부합하는 정보는 아주 중요하고 신빙성이 있는 것으로 평가하고 자신의 견해에 배치되는 정보는 그 신빙성과 가치를 고의적으로 평가절하 해버리는 것이다. 그 결과 매우 부적절한 의사결정이 이뤄지게 된다.
왜 이런 현상이 나타나는 것일까? 여기에는 두 가지의 근본적인 심리적 요인이 작용한다고 한다. 첫 번째 심리적 요인은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무의식적으로 결정한 후에 그것을 하고 싶은 이유가 무엇인지를 생각하려는 인간의 성향이다. 두 번째 심리적 요인은 좋아하지 않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것에 더 적극적으로 끌리는 인간의 성향이다. 이러한 성향은 어린 아이에게서 쉽게 볼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의 잠재적인 지각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정보에 이끌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우리사회에서 어떤 정치적이거나 사회적인 이슈로 논쟁이 벌어지는 경우 끝도 없는 대립이 계속되는 것은 바로 우리사회에 존재하는 과도한 흑백논리와 더불어 극심한 확증편향 때문이다. 만일 어떤 이슈에 대해 두 편으로 갈라져 논쟁이 이뤄지는 경우 필연적으로 집단광기가 발생해 이성을 가진 인간이라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궤변으로 흐르게 된다. 이때 만일 상대편이 논박할 수 없는 실증적 근거를 제시하면 승복할까? 그렇지 않다. 이때는 허수아비 때리기나 인신공격으로 더욱 극렬하게 덤벼든다. 허수아비 때리기(straw man fallacy)란 상대방의 입장과 피상적으로는 유사하지만 사실은 비동일한 명제(곧, 허수아비)를 임의로 만들어서 반박논리를 펴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갑이 “난 맑은 날이 좋아”라고 말했다면, 을은 이 논리를 반박하기 위해 “맑은 날만 계속된다면 비가 오지 말아야 된다는 건대, 이건 모두 굶어죽자는 주장과 같다”는 식으로 논박하는 것이다. 갑이 비가 안 내려고 된다거나 다 굶어죽자는 뜻으로 말한 적이 없는데 상대방을 논박하기 위한 허수아비를 의도적으로 만들어 마구 때리는 것이다. 사드 배치문제 등 안보논쟁에서 이런 경우가 많다.
한편 인신공격이란 논리적 오류의 하나인데 상대방의 주장에 객관적 증거가 있고 어떤 흠을 잡기가 어려울 때 동원하는 수법으로 논쟁의 방향을 문제 그 자체보다는 상대방 인물로 돌려서 공격함으로써 상대방의 논리를 신뢰할 수 없다는 식으로 덤벼드는 것을 말한다. 즉 상대방의 학력, 인품, 직업, 과거의 행적, 말실수 등을 들춰내 그런 사람이 제시한 증거는 믿을 수 없다는 식이다. 국가든 사회든 또는 어떤 조직이든 확증편향으로 인해 편 가르기와 비타협적인 논쟁이 벌어질 개연성은 언제든지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파편화가 지속되면 다 함께 쇠락의 길로 가게 된다. 이때 필요한 게 리더와 리더십이다. 리더는 중간자적 입장에서 양쪽의 주장을 듣고 이성적 판단을 내려 국가나 사회 그리고 조직이 나아가야 할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줘야 한다. 그러면 모두 발전의 길로 나아가게 된다. 그런데 리더의 위치에 있는 사람이 편 가르기를 조장하고 어느 한쪽 편에 가담해 논쟁을 부추긴다면 국가든 사회든 조직이든 망하는 길로 나아가게 된다. 이런 연유로 과학기술의 폭발적 발전에도 불구하고 리더의 중요성이 점점 커지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