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의 원정길에서 있었던 일이다. 알렉산더는 태양이 작열하는 여름에 3만명의 보병부대를 이끌고 게드로시안(Gedrosian) 사막이라 불리는 아시아 중부의 메마른 평원을 횡단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알렉산더도 몹시 목이 말랐다. 그러나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선두에 서서 계속 걷는 것 뿐이었다.
병사들도 고통을 참으며 알렉산더를 따라 걸었다. 이들이 이런 고통을 참으면 걷는 동안 물을 찾으러 떠난 정찰병들이 비참하리만큼 작은 양의 물을 발견했다. 그들은 어렵게 투구에 물을 떠서 알렉산더에게 돌아갔다. 알렉산더는 그들에게 감사를 표하고 그 투구를 받아들어 병사들이 보는 앞에서 투구의 물을 땅에 쏟아버렸다. 물을 쏟아버린 그의 행동은 모든 병사들에게 물을 마신 것과 같은 효과를 가져왔다.
위의 이야기는 장수의 리더십 측면에서 통상 인용된다. 그러나 공정성이라는 측면에서도 중요한 교훈을 준다. 목마른 3만명의 병사들을 그냥 놔둔 채 알렉산더만 물을 마시는 것은 공정하지 못하다. 아무리 왕이라도 재물을 독식하는 것은 불공정하기 때문이다. 알렉산더의 위대한 업적을 우리는 사막에 쏟아버린 물 한 바가지에서 유추할 수 있다. 그는 매우 공정한 리더십을 발휘했던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자기에게 친절하게 대하는 사람에게는 친절하게 대하고 반대로 불친절한 사람에게는 그런 방식으로 되갚는다. 이런 행동의 밑바탕에는 친절에는 친절로 불친절에는 불친절로 되갚는 것이 공정하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만일 기업 경영자가 평소에 사리사욕에만 혈안이 돼 사원들의 복지를 도외시한다면 사원들은 신나게 일하지 않을 것이다. 그것이 공정하다는 생각을 자기도 모르게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만일 기업이 어려움에 빠지게 되면 아무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것이다. 반면에 평소에 사원들의 복지에 많은 배려를 했던 기업이 어려움에 직면했을 때는 사원들이 스스로 임금을 깎고 연장근무를 하면서 자구노력을 하게 된다. 이렇게 하는 것이 공정하다는 인식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통적 경제이론에는 기업이 이윤극대화를 할 수 있는 방법이 자세하게 나와 있다. 예를 들면 수요와 공급에 따라 유연하게 가격을 조정함으로써 이익을 극대화 한다거나 독점기업의 경우 한계비용과(MC)과 한계수입(MR)이 일치하도록 가격을 설정하면 이윤을 극대화할 수 있다. 그런데 현실 경제에서는 기업이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유연하게 가격조정을 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매우 인기 있는 영화를 상영하는데 극장 좌석 수에 비해 많은 사람들이 표를 구하려 하는 경우에는 가격을 인상함으로써 더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결승전도 마찬가지다. 그런데도 기업은 가격인상을 자제한다. 전통적인 경제이론에 따르면 분명히 가격을 올려야 하는데 실제로 기업들은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이다. 기업들이 그런 행동을 하지 않는 것은 소비자들에게 부당하다는 즉 공정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이다. 행동경제학자들이 실험한 최후통첩 게임(ultimatum game)에서 상대방이 공정하지 못하다는 인상을 받게 되면 자신의 손해를 무릅쓰면서까지 상대방의 제안을 거부해버리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기업과 소비자 간의 관계도 똑같다. 만약 소비자들이 어떤 기업이 불공정한 행위를 한다는 인식을 갖게 되면 자신의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그 기업의 제품을 거부해버릴 수도 있다.
모든 기업에서는 고객에게 친절하게 대하라고 직원들을 교육시킨다. 그런데도 직원들 중에는 매우 불친절하게 고객을 대하는 것을 종종 본다. 왜 그럴까? 일차적으로는 그 직원의 인간성을 의심해 볼 수 있다. 그러나 문제의 근원을 인간성에서 찾으면 문제를 해결할 방도가 없다. 대부분의 불친절은 친절하게 대할 만한 모티베이션이 되지 않기 때문에 나타나는 현상이다. 즉 자신이 정당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고객을 정당하게 대할 마음이 나지 않는 것이다. 자신이 부당하게 낮은 임금을 받고 있다거나 혹은 인격적 대우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느끼는 직원은 자발적으로 열심히 일하지도 않고 고객에게 친절하게 대하지도 않을 것이다. 그렇게 하는 것이 공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받은 것만큼 되돌려주는 것이다.
그러면 임금의 측면에서 사람들은 어느 정도의 수준을 공정하다고 생각할까? 행동경제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자기와 비슷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받는 임금이다. 예를 들어 자기와 유사한 직종에 근무하고 학력이나 경력이 비슷하다면 자신도 그 사람이 받는 것만큼 받는 것이 공정하다고 보는 것이다. 이것은 현재 나의 임금이 절대적으로 많은가 적은가가 공정성의 기준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상대적 임금이 기준이 된다는 것이다. 만일 내가 받는 임금이 유사한 위치에 있는 동료보다 적다면 누구든지 분노할 것이다. 불공정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회사에서는 생산성을 운운하겠지만 그런 말이 귀에 들어올 여지가 없다. 불공정하다는 생각을 가진 직원은 아마도 그 순간부터 신나게 일하지 않을 것이다.
이상의 논의에서 알 수 있는 바와 같이 공정성(fairness)은 한가한 철학자들이나 논의하고 있어야 할 덕목이 아니다. 삶의 현장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현상들이 공정성과 관련된다는 사실을 기업의 경영자와 조직의 리더들은 잊지 말아야 한다. 현재 우리사회에서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임금격차 문제, 계층 간의 소득격차문제, 대학 부정입학 문제, 부정부패 문제, 불로소득 문제, 편법을 동원한 경영권 승계문제 등이 큰 사회적 이슈가 되는 것도 바로 공정성 때문이다. 만일 공정성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사회적 갈등과 분노의 골은 깊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