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개는 왜 담장을 뛰어넘지 못했을까?

조회수 2,818 촬영일(노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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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연의 경제이야기]

백곡 김득신(金得臣) 선생의 묘비명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에게 큰 교훈을 준다. 그 어떤 명문(名文)보다도 함축적으로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의 태도가 어떠해야 하는가를 말해준다. 

선생의 묘비명을 보자. “재주가 남만 못하다고 스스로 한계를 짓지 말라. 나보다 어리석고 둔한 사람도 없었지만, 결국에는 이룸이 있었다. 모든 것은 힘쓰는데 달려 있을 뿐이다(無以才不猶, 人自自也. 莫魯於我, 終亦有成. 在勉强而已).” 

김득신(1604-1684)의 본관은 안동, 호는 백곡(栢谷)이다. 아버지는 부제학 김치(金緻)이며 조부는 임진왜란 때 진주대첩을 이끈 김시민(金時敏) 장군이다. 백곡 선생은 17세기 조선의 최고시인으로 평가받는 선비이다. 

그는 조선왕조 선조(宣祖)에서 숙종(肅宗)에 이르는 시대를 산 시인이자 비평가이다. 백곡 선생은 우리에게 1500여 수의 주옥같은 시를 남겨주었다는 점에서도 훌륭하지만 그보다도 더 값진 유산은 대기만성(大器晩成)의 전형(典型)이자 유지경성(有志竟成)의 표본이라는 점이다. 

끊임없이 자신과 싸운 

백곡 선생은 인내와 끈기, 포기하지 않는 정진이 어떤 결과를 가져다주는 지를 보여줌으로써 모든 것이 자신에게 달려 있음을 실증해준 스승이다. 백곡 선생이 할 수 있었다면 우리가 못할 이유가 없다. 

백곡 선생은 어릴 때 천연두를 앓은 탓인지 한마디로 둔재 중 둔재였다. 어린 시절부터 모든 것이 늦되었다. 10세에야 겨우 글자를 깨치고 20세에야 비로소 글 한 편을 지었다. 당시 3세에 천자문을 익히고, 1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심리학 교수인 마틴 셀리그먼(Martin E. P. Seligman) 박사는 긍정심리학(Positive Psychology)의 창시자이자 학습된 무기력(learned helplessness) 이론의 개발자로 유명한 학자이다. 그는 개를 이용해 인상적인 실험을 했다. 24마리의 개를 세 집단으로 나눠 상자에 넣고 전기충격을 줬다. 그런데 세 집단에게 각각 다른 환경에 노출되도록 통제했다. 

제1집단은 환경통제가 가능한 집단이다. 이곳의 개에게는 코로 조작기를 누르면 전기충격을 스스로 멈출 수 있는 환경을 제공했다. 개 앞에 나무토막을 매달아두고 그걸 밀면 전기가 차단되도록 해놓은 것이다. 따라서 이 집단은 스스로 혐오스런 환경에서 회피할 수 있는 수단을 갖고 있다. 반복적으로 전기충격을 주면 개는 코앞의 조작기를 눌러 전기충격을 피하는 방법을 학습하게 되는 것이다. 

제2집단은 환경통제가 불가능한 집단이다. 코로 조작기를 눌러도 전기충격을 피할 수 없고, 몸이 묶여 있어 어떠한 대처도 할 수 없는 환경에 놓이게 했다. 전기충격 시간은 제1집단의 개와 똑같이 했다. 즉 제1집단의 개가 코로 조작기를 눌러 전기충격을 멈추는 순간 제2집단의 개도 전기충격을 중단했다. 그러니까 제1집단과 제2집단은 동일한 전기충격을 경험하도록 했다.

제3집단은 비조작집단이다. 즉 제3집단은 비교집단으로 상자 안에 있었으나 전기충격을 주지 않았다. 그리고 얼마간 상자에 두었다가 그냥 풀어주었다. 그러니까 이 집단은 전기충격에 대한 선행학습이 전혀 없는 상태다.

개들에게 이런 경험을 하게 한 후 셀리그먼 박사팀은 24시간 후에 이들 세 집단 모두를 다른 셔틀 상자에 옮겨 놓고 전기충격을 주었다. 그 상자는 가운데 담이 가로놓여 있고 쉽사리 넘을 수는 없으나 개들이 노력만 하면 넘을 수 있는 정도의 담이었다. 그런데 전기충격을 받은 개들의 행동은 놀라운 것이었다.

스스로 환경을 통제할 수 있었던 제1집단과 아무런 조작도 하지 않고 자연 상태로 두었던 제3집단의 개들은 전기충격을 주자 미친 듯이 이리저리 뛰어다니다가 중앙의 담을 넘어 전기충격을 회피했다. 

그러나 제2집단은 전기충격이 주어졌음에도 불구하고 피하려 하지 않고 구석에 웅크리고 앉아 전기충격을 받아들이고 있었다. 처음 30여초 동안은 다른 집단의 개들과 마찬가지로 미친 듯이 이리저리 날뛰었다. 그러다가 움직임을 멈추고 누워서 조용히 전기충격을 받아들이면서 낑낑거리며 참고 있었다. 이것은 제2집단이 24시간 전의 경험, 즉 자신이 어떤 행동을 해도 그 고통스러운 상황을 극복할 수 없을 것이라는 무기력(helplessness)이 학습된 것이다.

마틴 셀리그먼 박사는 자신의 힘으로는 회피 불가능한 전기충격(혐오스런 자극)을 경험한 개들은 그러한 전기충격이 회피 가능한 환경에서 가해지는 경우에도 회피반응을 하지 못하는 사실을 보고 이를 ‘학습된 무기력’이라 칭했다.


조그만 성취라도 늘 맛보도록 해야 

그러면 인간은 어떨까? 인간에 대한 실험은 1974년에 이뤄졌는데, 혐오자극으로는 소음(noise)을 택했다. 대학생들을 세 집단으로 나눠 A집단(도피가능집단)은 조작기를 누르면 소음이 꺼지는 방에 두었고, B집단은 동일한 소음을 듣도록 돼있으나 어떤 반응으로도 소음을 통제할 수 없는 환경에 두었다. C집단에게는 소음을 들려주지 않았다. 

그 후 모든 피험자들에게 셔틀상자의 상황에서 반응하게끔 한 결과 A와 C집단은 소음을 회피하는 행동을 했으나 B집단은 대부분 수동적으로 앉아서 불쾌하고 고통스런 소음을 받아들이면서 참고 있었다.

‘학습된 무기력’ 상태에 빠지지 않게 하려면 조그만 성취라도 늘 맛보도록 해야 한다. ‘조그만 성취’는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해 무기력에서 벗어나는 계기가 된다.

학습된 무기력 상태가 나타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부정적 자기암시’ 때문이다. 불가항력적인 혐오스런 상황을 경험한 사람은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부정적인 암시를 자신의 잠재의식(subconscious mind) 속에 입력하게 된다. 그러면 이런 잠재의식의 작용으로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혐오스런 상황에서도 자포자기 해버리는 것이다.

학습된 무기력 이론은 자녀교육에도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해준다. 만일 자녀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달성하기 어려운 성취를 요구하게 되면(예를 들어 전교 1등) ‘학습된 무기력’에 빠져 자포자기 상태가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자녀가 학습된 무기력에 빠지지 않게 하려면 자녀의 능력을 벗어나는 과도한 기대를 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조그만 성취를 계속 맞볼 수 있도록 해줘야 하고, 결과가 아닌 과정칭찬(praise progress)을 해줘야 한다. 즉 자녀가 열심히 공부해 성적이 향상되거나, 공부하는 과정에서 좋은 점이 발견되면 그때그때 칭찬을 해줘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들이 학생들에게 지나치게 어려운 학습을 강요한다거나 또는 학습부진을 질책한다거나,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기회를 박탈하게 되면 학생이 학습된 무기력에 빠질 수 있다. 교사의 일거수일투족은 학생들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이러한 논리는 상대적 강자와 약자로 구성된 집단에서 공통적으로 적용된다. 강자가 약자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다거나, 약자의 자유의지를 꺾어버리고 독단적인 행동을 하면 약자는 자포자기에 빠져 학습된 무기력 상태가 되어버린다. 이런 집단이 잘 될 리가 없다. 
0세도 못되어 사서삼경을 독파하고, 20대에 과거에 급제한 인재들이 수두룩한 시대에 늦어도 많이 늦는 선비였다. 

30대에 과거에 합격해도 매우 늦었다고 하는 시대에 백곡 김득신은 무려 59세에야 과거에 합격한 입지전적 인물이다. 오늘날 개념으로는 은퇴해야 할 나이인 59세에 행정고시에 합격한 것이다. 
김득신이 10살 때 청당현(淸塘縣, 지금의 증평)에 살면서 아버지로부터 글을 배웠는데, 3일이 지나도 제대로 읽지도 못했고, 금방 읽은 내용도 곧바로 잊어버렸다고 한다. 오늘날 개념으로는 학습지진아에 속한 아이였다. 머리가 너무 나빠 아무리 글을 배워도 도무지 진척이 없었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저런 둔재에게 글을 가르쳐서 뭘 하겠느냐고 수군거렸지만 그의 아버지는 “그래도 저 아이가 공부를 포기하지 않으니 오히려 대견스럽네. 대기만성이라 하지 않았는가?”라고 담담하게 말했다고 한다. 

아버지 김치는 동래부사(東萊府使)와 경상도관찰사를 지낸 고위관리이자 고고한 선비였다. 이 아버지가 백곡의 멘토이자 스승이었다. 학식 높은 아버지의 노둔(魯鈍)한 아들에 대한 태도는 오늘날 자식을 키우는 모든 아버지들에게 커다란 귀감이 된다. 아들이 보통아이들 이하로 노둔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꾸짖거나 좌절하지 않고, 그가 포기하지 않고 공부에 열중하니 대기만성 할 것이라고 믿어주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믿고, 칭찬하고, 격려하고, 더욱 분발하도록 독려해주었다. 

백곡 선생은 조선 최고의 다독가였다. 그는 자신이 우둔하다는 것을 알기에 읽고 또 읽었다. 그는 독수기(讀數記)라는 책에 자신이 읽은 책의 회수를 기록해두었는데, 노자(老子)는 2만 번, 목가산기(木假山記)는 1만 8,000번 등 1만 번 이상 읽은 책이 36권에 달했다. 특히 사기(史記)의 백이열전(伯夷列傳)을 좋아해 무려 11만 3,000번을 읽었다고 한다.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독서기록이다. 

김득신은 이미 당대에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었지만 과거와는 인연이 멀었다. 당파싸움이 치열했던 시기에 무당파인 그가 과거에 합격하기란 하늘에 별 따기만큼이나 어려웠던 것이다. 보통 선비들이 30대까지만 과거시험에 도전했으나 김득신은 계속적으로 도전했다. 돌아가진 아버지가 “60세까지는 과거에 응시하라”고 유명(遺命)을 남겼기 때문이다. 

아마도 아버지는 김득신의 노둔함, 그리고 그의 포기하지 않는 성품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이런 유명을 남긴 것 같다. 드디어 그는 60세를 문턱에 둔 59세에 과거에 급제했다. 이토록 끈질긴 도전, 값진 도전, 아름다운 도전이 또 어디 있을까? 

대기만성을 할 수 있었던 힘의 원천 

그것은 아버지의 긍정적 암시(positive suggestion)이다. 아버지는 남달리 노둔한 아들을 꾸짖거나 포기하지 않고 격려하고 믿어주었다. 이러한 아버지의 태도는 김득신으로 하여금 긍정적 자기암시(autosuggestion)를 하도록 만들었을 것이다. 자기암시란 오감(시각, 청각, 미각, 후각, 촉각)을 통해 잠재의식 속에 스스로 어떤 생각을 불어넣거니 자극을 주는 행동을 말한다. 

정신분석학자들과 자기계발 이론가들에 따르면 인간의 정신영역은 의식과 무의식 또는 잠재의식으로 구성되는데, 의식(conscious mind)은 10%에 불과하며 잠재의식(subconscious mind)이 90%에 이른다고 한다. 의식은 우리가 자각할 수 있는 정신영역, 잠재의식은 자각할 수 없는 정신영역을 말하는데, 의식에서 의지가 나온다면 잠재의식에서 잠재력이 나온다. 

따라서 우리가 어떤 잠제의식을 갖느냐에 따라 잠재력을 극대로 발휘할 수 있느냐 아니면 사장하느냐가 결정된다. 그런데 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잠재의식의 힘은 엄청나서 입력된 정보대로 현실화하는데, 긍정적 정보가 입력되면 성공 메커니즘을, 반대로 부정적인 정보가 입력되면 실패 메커니즘을 작동시킨다고 한다. 

백곡 선생은 자신의 노둔함을 부정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힘써 노력하면 결국에는 이룰 수 있다’는 긍정적 생각을 잠재의식 속에 새겨 넣음으로써 마침내 이루어냈다. 스스로 자신의 능력에 한계를 짓지 않으면 현대를 사는 우리도 마침내 목표를 성취할 수 있을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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