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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세상 네트워크와 메르스 확산

조회수 4,576 촬영일(노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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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연의 경제이야기]

미국의 사회심리학자인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은 하버드 대학교 교수시절 매우 흥미로운 실험을 하나 하였다. 그는 네브래스카 주의 오마하(Omaha)에 사는 사람을 임의로 추출해서 편지를 띄웠다. 그 편지를 최종적으로 받는 사람은 매사추세츠 주 보스턴(Boston)에 사는 한 증권거래인이었다.
이 편지는 보스턴의 그 증권거래인을 향해 매번 ‘아는 사람에서 아는 사람으로 이어지는’ 방식으로 전달되어 갔다. 마치 수천 킬로미터 장거리 이어달리기처럼 전달되어 나가는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그 보스턴 증권거래인을 ‘아는’ 사람이 그 편지를 발송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전달된 편지가 몇 사람을 거쳐서 도착했는지를 조사해보니 중앙값이 5.5명이었다. 즉 네브래스카 주의 오마하에서 임의로 선정된 사람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보스턴 증권거래인에게 편지를 전달하는데 단 5.5단계를 거쳤다는 것이다. 이것은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6다리만 거치면 서로 연관이 있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이것을 인간관계 6단계법칙(Six Degrees Separation)이라 하며, 이러한 현상을 ‘작은 세상 효과’(Small World Effect)라 한다.

1994년 1월 3명의 미국청년이 당시 MTV를 통해 방영되던 <존스튜어트쇼>에 헐리웃 배우인 케빈 베이컨(Kevin Bacon)과 함께 초청되었는데, 이들은 청중들이 영화배우의 이름을 댈 때마다 그 배우가 케빈 베이컨과 6명 이내에서 연결된다는 시범을 보였다. 이것이 미국 전역으로 유행처럼 번졌고, <케빈 베이컨의 6단계법칙>(Six Degrees of Kevin Bacon)이라는 책이 출간되었으며, 인기 있는 게임이 되었다. 나아가서 사회과학자들뿐만 아니라 자연과학자들을 포함 많은 학자들이 이를 연구하게 되었다.

케빈 베이컨 6단계 게임에서 힌트를 얻은 던컨 와츠(Duncan J. Watts)는 실제로 22만 5,000명에 이르는 헐리웃 배우들의 네트워크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분석했다. 분석결과는 놀라운 것이었다. 모든 배우들이 평균 3.65단계로 연결되었다. 그러니까 헐리웃 배우들은 3-4명만 거치면 누구나 다 서로 연결된다는 것이다.
코넬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던 던컨 와츠(Duncan J. Watts)와 그의 지도교수였던 스티븐 스트로갓츠(Steven Strogatz)가 1998년 네이처(Nature)지에 ‘작은 세상 네트워크의 집단역학(Collective Dynamics of Small-world Networks)’이라는 논문을 발표하여 굉장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들은 모든 네트워크를 그 연결방식에 따라 3가지로 나누었는데, 규칙적인 네트워크(Regular Network), 무작위 네트워크(Random Network), 작은 세상 네트워크(Small-World Network) 등이다. 규칙적인 네트워크는 일정한 규칙에 따라 인접한 곳과 일정한 숫자로만 연결되어 있는 네트워크, 무작위 네트워크는 일정한 규칙이 없이 개방적으로 연결되어 있는 네트워크. 작은 세상 네트워크는 대부분의 구성원들은 규칙적 네트워크를 이루는데, 구성원의 일부만이 전혀 엉뚱한 곳으로 연결되어 있는 네트워크를 말한다.
이들은 1,000명으로 구성된 네트워크에서 한 사람이 근처의 10사람과 알고 지낸다고 가정했을 때 규칙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되고, 이때는 평균적으로 50단계를 거쳐야 다른 사람과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러나 여기에 엉뚱한 곳으로 가지를 뻗은 인간관계를 늘려가게 되었을 때, 100개 중 한 가닥만 다른 지역으로 연결되어도 평균단계가 10분의 1로 줄어들게 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들은 몇 가닥의 무작위 연결만으로도 모든 사람에게 쉽게 연결될 수 있는 이 네트워크를 ‘작은 세상 네트워크’라고 불렀다.
 

예를 들어보자. 전체가 10개 반인 초등학교를 생각해보자. 어떤 반에 한 학생이 감기에 걸렸다. 만일 이 반에 있는 모든 학생들이 다른 반 학생들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규칙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면 감기는 잘 퍼져나가지 않는다. 그런데 만일 이 반 학생들이 무작위로 여기저기 연결되어 있는 무작위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면 감기는 급속도로 퍼져나간다. 그렇다면 다른 반으로 연결된 학생이 소수인 경우, 즉 작은 세상 네트워크인 경우에는 어떻게 될까? 이 경우에도 무작위 네트워크와 마찬가지로 감기가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것이 관찰되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들어보자. 한 반 학생이 20명인데 그 중 한 학생이 감기에 걸렸다. 그런데 이 반 학생 20명이 다른 반 학생들과는 전혀 교류가 없는 규칙적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면 감기는 학교 전체로 퍼져나가지 않는다. 반대로 이 반 학생 20명이 다른 반 학생들과 무작위로 어울린다면 감기는 학교 전체로 급속도로 퍼져나간다. 그런데 다른 반 학생과 어울리는 학생이 단 1-2명만 있는 경우에도 감기는 삽시간에 학교 전체로 퍼져나간다는 것이다. 불과 6다리만 건너면 모두 연결되어버리는 효과 때문에 이런 현상이 나타난다. 즉 네트워크 자체가 굉장히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엉뚱한 곳으로 링크되어 있는 소수의 멤버 때문에 네트워크 전체가 서로 밀접한 관계에 놓인 것처럼 되는 현상을 ‘작은 세상 효과’라 한다.

이번에 우리사회에 급속도로 퍼져나가는 메르스의 사례가 바로 ‘작은 세상 네트워크’의 좋은 예이다. 방역당국이 늦게나마 차단과 격리조치를 통해 규칙적인 네트워크를 만들려고 했다. 그러나 차단과 격리조치에 포함되지 않은 극히 소수의 환자가 작은 세상 네트워크를 형성한 것이다. 만약 차단과 격리조치가 좀 더 일찍, 그리고 완벽하게 이루어졌더라면 메르스는 폐쇄 네트워크에 갇혀 외부확산이 방지되었을 것이다. 제궤의혈(提潰蟻穴), 곧 ‘개미구멍이 큰 둑을 무너뜨린다’는 말이 있다. 완벽한 둑이 규칙적 네트워크라면 개미구멍이 난 둑이 작은 세상 네트워크이다. 메르스는 그 작은 개미구멍을 통해 작은 세상 네트워크를 형성하면서 퍼져나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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