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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교가 총을 쏘면 졸병도 총을 쏜다!

조회수 2,643 촬영일(노출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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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연의 경제이야기]

지금부터 40여 년 전의 일이다. 전방 모 부대에서 지휘관을 하고 있던 선배장교 한 분을 찾아 뵌 일이 있었다. 그 선배님은 후배들이 왔다고 매운탕을 끓여주겠다면서 M1 소총을 들고 근처 개울로 갔다. 당시엔 환경오염이라는 말 자체가 생소할 정도로 시골의 물은 맑고 깨끗했다. 당연히 물고기도 많았다. 그런데 개울 웅덩이에 대고 소총을 쏘니 순식간에 물고기가 잠시 동안 기절을 해서 허연 배를 드러냈다. 그걸 얼른 건져서 바구니에 담으면 고기잡이 끝이다. 몇 번 그렇게 하고나니 제법 많은 물고기가 잡혀 매운탕을 맛있게 먹은 기억이 난다.

그런데 얼마 후 들으니 그 부대에서 사고가 났단다. 장교들이 개울 웅덩이에 총을 쏴서 고기를 잡는 걸 본 졸병들이 장교들이 없는 틈을 타 자기도 그렇게 하다가 웅덩이에 쏜 총알이 바닥에 있는 큰 돌멩이에 맞았던지 그만 유탄이 나 구경하던 동네 꼬마 다리에 상처를 입혔다는 것이었다. 다행히 급히 후송해서 치료를 받아 큰 문제는 없었지만 큰일 날 뻔한 사고였다.

우리사회에서 공직자들의 근무태도를 운위할 때 매스컴에 종종 등장하는 용어 중 하나가 도덕적 해이라는 말이다. 도덕적 해이(moral hazard)라는 용어는 원래 보험시장에서 쓰였던 말이다. 즉 화재보험 가입자가 보험에 들지 않았을 경우에는 화재가 발생하면 큰 손실을 보게 되므로 화재가 나지 않도록 최선의 노력을 할 것이다. 그러나 보험에 가입하게 되면 보험만 믿고 정신이 해이해져 주의의무를 다하지 않는 관계로 화재가 발생하여 보험사에 경제적 손실을 끼치게 된다. 이와 같이 법적으로 빠져나갈 구멍만 믿고 최선의 의무를 다하지 않는 현상을 도덕적 해이라 한다.

도덕적 해이가 나타나는 근본적인 원인은 정보의 비대칭성(asymmetry of information) 때문이다. 정보의 비대칭성이란 한쪽은 정보를 가지고 있는데 다른 쪽은 정보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를 말한다. 앞의 화재보험 예에서 보험가입자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확실한 정보를 가지고 있지만 보험회사는 각 개인에 대하여 그런 정보를 가질 수가 없다. 이와 같이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하게 되면 주인(principal)이 대리인(agent)의 행동을 완전히 파악할 수 없게 되므로 대리인은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행동을 하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도덕적 해이가 나타나게 된다.

현재는 도덕적 해이라는 용어의 의미가 확대되어 경제사회 전반에 걸친 제도적쪾관행적 허점을 이용하여 경제적 손실을 가중시키는 일체의 행위를 가리키는 용어로 사용되고 있다. 이러한 도덕적 해이 현상의 대표적 사례로 금융기관의 막대한 부실채권 보유와 거대기업의 과다한 차입경영을 들 수 있다. 이들의 경영자들은 정부가 국민경제에 미칠 파장 때문에 이들을 파산시키지 못할 것이라고 믿고 대기업과 은행은 돈을 마구 끌어 쓰고 빌려주었는데 이와 같은 행태(行態)가 도덕적 해이에서 비롯된다는 것이다. 결국 이와 같은 행태의 결과 금융기관이 부실화되고 대기업들이 과중한 부채로 인하여 도산하게 됨에 따라 1997년 경제위기(이른바 IMF 사태)를 빚게 되었다.

법적으로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만 적당히 일하고 의무이행을 성실하게 하지 않거나, 조직이나 공동체의 발전은 생각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서 경비를 무절제하게 사용하고 조직을 방만하게 운영하는 것 등도 도덕적 해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도덕적 해이 현상은 공공조직에서 빈번히 나타난다. 공공조직에 근무하는 사람들은 그 조직의 성과가 자신의 소득과 직접 연결되는 것도 아니며 남보다 열심히 일한다고 해서 봉급을 더 주는 것도 아니다. 또 공공조직은 그 운영예산이 재정에 의해서 조달되는 경우가 많으므로 비효율적으로 운영된다고 해서 파산하거나 퇴출되지 않는다. 따라서 근무자들은 정해진 규정이나 관행에 따라서 기계적으로 일할 뿐 창의적으로 일하려는 인센티브가 낮다. 그저 규정에 따라 일하면 문책을 받을 위험성도 없고 일하기도 편한데 구태여 위험성이 따르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적용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론적으로 행정부, 입법부, 사법부 할 것 없이 공직자는 대리인이고 국민이 주인이다. 그런데 주인인 국민들은 대리인들인 공직자들이 어떤 행동을 하는지, 또 그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보를 대리인들만큼 알 수가 없다. 즉 주인과 대리인 사이에 심각한 정보의 비대칭성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경우 필연적으로 도덕적 해이 현상이 나타난다. 예를 들면 방만하고 비효율적인 예산지출, 불필요한 규제의 양산과 과다한 인력운영, 보고서만 멋지게 작성하는 탁상행정, 지위를 이용한 사익추구 등 이른바 관료주의적 병폐가 모두 도덕적 해이의 발로이다.

어떤 나라건 크던 작던 공공조직에서는 도덕적 해이 현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공공조직의 도덕적 해이가 도를 넘는 경우엔 결코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없다. 공공조직의 도덕적 해이는 곧바로 민간조직의 도덕적 해이를 불러일으키기 때문이다. IMF 사태도 따지고 보면 공공조직과 민간조직의 도덕적 해이가 어우러진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우리나라가 국민소득 1만 달러를 달성한 이후 무려 15년이 넘도록 2만 달러를 넘지 못하고 시소운동을 하고 있는 것은 다분히 공공부문의 비효율성 때문이다. 공공부문의 비효율성은 바로 도덕적 해이의 결과이다. 최근 국회와 지방의회의 예산편성 및 심의 과정에서 벌어진 소동과 건설현장 식당운영을 둘러싼 비리는 우리사회 고위 공직자들의 도덕적 해이가 어느 정도인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이른바 사회지도층 인사들이 공익을 빙자하여 사익을 추구하고 권력을 사유화하여 뒷구멍으로 배를 채우고 있는 것이다. 공공부문, 특히 고위 공직자들의 도덕성이 일정수준에 이르지 않으면 선진사회 건설은 공염불에 불과할 것이다. 공공부문이 도덕적 해이에 빠진 상태에서 어떻게 민간부문의 도덕적 의무를 요구할 수 있겠는가? 장교가 총을 쏴서 고기를 잡으면 졸병도 총을 쏴서 고기를 잡게 마련이고 그 과정에서 사고가 발생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이치가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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