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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정신과 선진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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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연의 경제이야기]

1917년 볼셰비키혁명이 성공한 이후 성립된 극단적인 사회주의 계획경제가 1991년 소련의 붕괴로 그 종말을 고하게 됨에 따라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우월성이 역사적으로 증명되었다. 현재까지 인류가 만들어낸 경제체제 가운데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가장 우수한 경제체제이다. 그러나 이것은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이상적인 체제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현재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등 자본주의 선진국들을 포함해서 전 세계가 고용문제와 소득분배 문제, 그리고 점점 심화되어가는 빈부격차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지만 이를 해결할 뾰족한 경제이론이나 정책대안이 없다.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다. 1997년 말에 발생한 외환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기업도산과 구조조정으로 대량의 실업이 발생하였고, 살아남은 기업들도 감원하거나 신규채용을 하지 않게 되었으며, 신규채용을 하더라도 과거처럼 일시에 대규모 인원을 채용하지 않고 필요시 수시 채용하는 형태로 전환하였다. 이렇게 되자 각종 학교졸업과 동시에 노동시장에 진입하는 청년들의 실업문제가 심각한 사회문제로 등장하였다.

이와 더불어 기업들이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자동화시설을 확충해감에 따라 고용 없는 성장(jobless growth)이 지속되고 있고, 고용을 하더라도 임금이 높은 정규직보다는 비정규직을 선호하게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국내기업들이 고비용 구조를 피해 중국이나 베트남 등 해외로 공장을 이전함에 따라 국내 일자리는 그만큼 감소하게 되었다.

2008년 9월에 발생한 미국발 금융위기는 세계경제에 더욱 큰 충격을 주었다. 그 여파로 한국경제도 큰 침체에 빠지게 되었다. 정부의 적절한 정책으로 한국은 금융위기의 악영향을 거시적 차원에서 신속하게 극복해가고 있지만 청년실업 문제, 조기 실직자의 재취업 문제, 소득분배 문제, 빈부격차의 심화 문제 등은 여전히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 있다.

이러한 난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함에 있어 당장 실천할 수 있는 이론과 정책대안을 고안하는 것이 우선되어야 하겠지만, 자본주의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는 ‘정신’이 무엇인가를 재검토해 보는 것이 보다 근본적인 일이라고 본다. 서구의 철학자들이 현실적으로 해결하기 어려운 철학적 난제에 봉착했을 때 당장 눈앞의 대안보다는 멀리 그리스-로마철학을 다시 한 번 검토해보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러면 근대 서구에서 발생하여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크게 발전해 온 근대 자본주의란 어떤 경제체제이고 그 정신적 기원은 어디서 찾아야 하는가? 

자본주의의 본질과 정신적 기원에 대해 가장 구체적인 분석을 한 학자는 막스 베버(Max Weber)이다. 그는 자본주의 사회를 지탱해 주는 어떤 ‘정신’이 있다는 점을 간파했다. 베버는 자본주의의 발전을 직접 보면서, 이 자본주의를 지탱해주고 있는 정신적 기반이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된다. 

그는 루터(Martin Luther)의 종교개혁(1517) 이후에 새롭게 등장한 프로테스탄트(청교도)에 의해서 자본주의 발전이 주도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게 된다. 이 자본주의 발전과 프로테스탄트의 윤리를 집중적으로 분석한 저술이 바로 ‘프로테스탄트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다. 베버는 이 저술에서 근대 자본주의정신의 원천이 청교도정신에 있다는 것을 논증하였다. 

그는 새로이 등장한 자본가들이 많은 돈을 벌어도 그것을 고리대금업을 하거나 사치를 하는데 낭비하지 않고 사업에 재투자하고 검소한 생활을 하는 것을 발견하였다.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살고자 하는 새로운 자본가들은 윤리적으로도 높은 수준을 유지해야 하는데, 그들에게 높은 수준의 도덕성을 보장해 준 것이 바로 프로테스탄티즘이라는 것이다. 이 프로테스탄티즘, 즉 청교도정신이 근대 자본주의정신의 밑바탕이 되었다는 것이다.

베버는 이와 같은 정신생활의 변혁이 근대 자본주의를 성립시킨 원동력이라고 보았다. 베버는 자본주의 사회가 나타나기 이전에도 인간들의 돈에 대한 욕망은 언제나 있었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사람들이 돈을 벌고자 하는 욕망에 어떤 윤리적인 통제가 가해지고 있다는 점이 이전과 비해 특징적이라는 점을 강조하였다. 베버는 또 영리추구라는 점에서의 자본주의는 중국ㆍ인도ㆍ바빌론에도 존재하였고 고대와 중세에도 존재하였다고 지적하였다. 그러나 이들 자본주의는 특수한 윤리적 성격이 결여되어 있었다고 강조한다.

근대 서구에서 발생한 자본주의정신의 특징은 종교윤리가 시장으로 나와 시장윤리가 되었다는 점이다. 이 점이 윤리적ㆍ정신적 기반 없이 자본주의 제도만을 받아들인 개발도상국들과 다른 점이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다. 충, 효, 예와 같은 전통 유교윤리가 시장으로 나오지 못하고 형이상학적 개인윤리로 끝나버렸다. 세계 15위의 경제력을 가진 한국이 국제투명성기구(TI)가 매년 발표하는 부패지수(CPI) 면에서 40위권을 맴돌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준다.

자본주의 윤리가 자리 잡지 못한 가운데 자본주의 제도만 작동하면 자본주의의 온갖 폐해가 나타난다. 자본주의 사회는 그것을 지탱해 줄 수 있는 윤리적ㆍ도덕적ㆍ정신적 기반이 확고하게, 그리고 종교적ㆍ신앙적 차원에서 있어야 비로소 인간다운 사회가 될 수 있다. 만일 이러한 정신적ㆍ윤리적 기반이 결여되어 있다면 그 사회는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장이 되고 과시소비와 방종, 그리고 부정과 부패가 만연한 천민자본주의적 사회가 되어버린다.

한편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빠른 경제성장을 가져오지만, 경제성장으로 소득이 높아지면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던 자본주의정신이 점차 약화된다는 문제점이 있다. 청교도적 자본주의정신의 요체는 정직, 금욕, 근면, 절제, 소명의식, 신뢰, 성실, 구제, 겸손, 시간선용 등 특정 종교차원을 넘어 인류보편적 가치를 지닌 덕목들이다. 만일 자본주의 시장경제를 지탱해주고 있는 이러한 윤리적ㆍ정신적 기반이 무너지게 되면 더 이상의 경제성장이 어려워지고 사회발전(social development)이 이루어지지 않아 선진경제를 건설할 수 없게 된다. 

따라서 한국이 선진경제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경제윤리를 더욱 제고시켜야 한다. 이는 어떤 특정 경제주체만의 책임이 아니며 기업경영을 둘러싼 모든 경제주체, 즉 정부와 기업 그리고 소비자들이 함께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다. 우선 정부는 부정부패를 일소하고 불필요한 규제를 제거해야 하며, 기업은 정도경영을 해야 한다. 또 모든 국민들이 천직의식과 근면ㆍ성실성을 회복해야 한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정신을 확립하는 것이다. 돈, 권력, 지식, 명예를 가진 사회지도층이 먼저 높은 도덕성과 의무감을 가져야 한다는 말이다. 특히 기업가ㆍ사업가들의 정도경영과 사명감이 절실히 요구된다. 이런 일부터 실천한다면 당면한 제반 경제문제도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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