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희 정승의 경청과 비판적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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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연의 경제이야기



조직의 크기에 관계없이 그것이 가정이든 기업이든 국가든 소통은 마치 우리 인체의 혈액의순환과 같이 조직의 생존에 필수적인 요소이다. 소통이 잘 되지 않고 어딘가가 막히면 몸에 이상이 발생하는 것처럼 조직에서도 소통이 되지 않으면 반드시 문제가 생긴다. 허준 선생이 동의보감에서 말한명언 ‘통즉불통(通則不痛), 불통즉통(不通則痛)’이라는 말, 곧 ‘통하면 아프지 않고, 통하지 않으면 아프다’는 말은 조직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조직에서 소통이 되지 않으면 조직이 반드시 아프다.

소통의 중요성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런데도 소통이 잘 안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자기만 옳다고 고집하면서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으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다른 사람은 배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익만 추구하는 경우에도 소통이 되지 않는다. 자신은 조금도 손해 보려 하지 않고다른 사람들의 양보만을 요구한다면 소통이 잘 될 리가 없다.

우리 역사상 가장 훌륭한 군왕(君王)을 꼽으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마 세종대왕을 들 것이다. 그렇다. 세종대왕은 전 세계적으로도 그 유래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훌륭한 성군(聖君)이었다고 생각된다. 한글 창제를 비롯해 정치·경제·사회·문화·국방 등 모든 면에서 탁월한 군주였고, 백성들의 여론을 수렴해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펼친 군주였다.

그런데 세종대왕 곁에는 황희(黃喜)라는 탁월한 정승이 있었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황희는 무려 24년 동안이나 정승의 반열에 있었는데, 그 중 18년 동안 영의정을 지냈다(우의정 1년, 좌의정 5년). 황희는 태종의 지신사(知申事: 도승지), 오늘날로 치면 대통령 비서실장을 4년을 하고 그 후 6조의 판서 직을 두루 거쳤다.

즉, 이조(吏曹), 호조(戶曹), 예조(禮曹), 병조(兵曹), 공조(工曹), 형조(刑曹) 판서직을 모두 역임했다. 그러니까 오늘날로 따지면 딱 여섯 개 있는 장관직을 모두 거치고 부총리(우의정, 좌의정)직 6년을 거처 총리를 18년을 한 것이다. 황희가 영의정에 오른 것은 1431년으로 69세 때의 일이다. 이때부터 세종대왕은 그를 1449년 87세 때까지 곁에 두고 국정을 총괄토록 했다. 황희는 벼슬살이만 무려 73년을 했다.늘 세종에게 사직(辭職)을 청했으나 세종은 윤허(允許)하지 않았고, 세종대왕이 승하하기 4개월 전까지 일을 하다 90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나게 된다.

그야말로 세종대왕은 황희를 승하하기 일보 직전까지 부려먹었는데, 황희는 훌륭하게 모든 일을 다해냈다. 그럼 황희가 그토록 오래 신임을 받을 수 있었던 비법은 무엇이었을까? 물론 그의 판단력과 일처리 능력이 탁월했던 게 큰 이유겠지만 그것만 가지고는 그런 신임을 얻을 수 없다. 황희는 소신과 원칙을 견지하는 등 강직하면서도 관용을 베풀 줄 알았고, 역지사지(易地思之)의 정신을 가지고 있었다. 또 매우 청렴하게 살았고 다른 사람들의 말을 경청할 줄 알았다. 그에 대한 일화를 보자.

비판적 사고,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고방식
황희는 6조의 판서, 우상(右相)과 좌상(左相), 영상(領相) 직을 거치면서 많은 회의를 했지만 회의석상에서 먼저 입을 여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다른 이들의 말을 두루 듣고 나중에 종합적인 의견을 제시했다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하급자들의 불만을 살 리도 없고, 각자의 의견을 두루 듣다 보니문제의 실상을 보다 잘 알 수 있어 결정에 실수가적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세종대왕의 신뢰가 굳건할 수밖에 없었다.

황희 정승이 집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였다. 집의 여종들이 서로 시끄럽게 싸우다가 한 여종이 황희에게 와서 “아무개가 이러저러한 못된 짓을 했으니 아주 나쁜 년입니다.” 라고 일러바쳤다. 그녀의 말을 들은황희는 “네 말이 옳다.”고 했다. 또 다른 여종이 와서 똑같은 말을 하니 황희는 또“네 말이 옳다.”고 했다. 마침 황희 조카가 옆에 있다가 “아저씨 너무 흐릿하십니다.

아무개는 이러하고 다른 아무개는 저러하니, 이 아무개가 옳고 저 아무개가 그릅니다.” 하며 자신이 판결을 하고 나서자 황희는 또 다시 “네 말도 옳다.”라고 말하고는 독서를 계속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얼핏 들으면 줏대 없는 행동 같은데, 어느 한쪽 말만 들어가지고는 사안을 정확하게 판단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화이다. 이런 황희의 행동이 비판적 사고의 전형을 보여준다. 여러 가지 다양한 관점에서 사안을 보고 되도록 많은 정보를 바탕으로 판단하는 것이다.

비판적 사고란 사물을 여러 각도에서 바라보고 판단하는 것을 말한다. 비판적 사고는 곧 다양성을 인정하는 사고방식이다. 모든 인간은 자신이 살아온 과정에 따라 나름대로의 준거틀(frame of reference)을 가지고 사물을 판단한다. 따라서 준거틀이 다르면 같은 사물이나 사안이라도 다른 시각에서 본다. 이것은 맞느냐 틀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서로 다를 뿐이다. 서로 다른 판단과 견해를 상대방이 나와 같지 않으니 틀렸다고 생각하면 소통이 되지 않는다.

기업을 둘러싼 환경은 더욱 복잡해지고 또한 급격하게 변하고 있으며, 그에 따라기업이 직면하는 불확실성도 더욱 커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최적의 대안을 도출하고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사물이나 현상을 다양한 시각에서 비교·검토해보는 사고의 유연성 갖지 않으면 안 된다. 전문가들은 지식정보화시대의 관리자는 결코 상관의 명령만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예스맨’이 돼서는 안 되며,창의적인 사고를 할 수 있는 인재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창의적인 인재가 되기위한 중요한 요건이 바로 비판적 사고이다. 리더가 과거의 관행이나 자신의 편협한 고정관념에 사로잡혀 있으면 조직의 생존을 보장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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